'성지순례'라는 단어를 듣고 예루살렘이나 메카 등 거대종교에서 성지로 모시는 지역이 먼저 떠오르면, 요즘 유행하는 표현대로 '아재' 취급받기 십상이다. 과거에 유명했던 인터넷 게시물을 다시 찾아보고 댓글을 다는 행동이 먼저 떠오른다면, 인터넷 언어생활에 익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종교적 의미가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지역을 찾아가는 행동 일체가 '성지순례'라고 불리고 있다.
물론 성지순례 본연의 의미에 충실하게, 가톨릭 성지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도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정한 문화콘텐츠의 팬들이 자신들에게만 의미있는 '나만의 성지'로 여행을 떠나는 일도 많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팬이라면, 캄보디아 씨엠립에 있는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여행을 가서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성지순례'를 즐기곤 한다.
또, 일본 고교야구 만화에 익숙한 팬이라면 오사카 여행을 가서 고교야구의 성지인 '고시엔' 구장을 찾곤 한다. 지하철역에서부터 '터치' 등 고교야구를 소재로 한 유명만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고, 주인공들이 한번씩은 들리는 야구신사도 구장 바로 옆에 있다.
이처럼 나만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매니아 여행자들은, 스스로 여행코스를 창조하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과 가까운 데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문화콘텐츠 강국이어서 나만의 성지를 찾는 매니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일본에서 전대미문의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자,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기후현 등을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매니아 여행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아예 이들을 노리고 성지순례를 기획하는 여행상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너의 이름은'의 경우 지난 2월 하나투어에서 투어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작품 속 모습과 실제 풍경이 매우 흡사해 성지가 된 히다 후루카와역, 택시정류장, 다리와 히다시 미술관과 도서관, 테카와카미야 신사 등을 방문하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단지 작품 속에 등장한 지역을 찾아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성지순례는 아니다. 여행에 식도락을 빼놓을 수 없다. 마침 일본에서 요리는 만화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재이며,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거둔 작품들이 여럿 있다.
'미스터 초밥왕' 때문에 일본 홋카이도로 여행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작품 속 주인공의 고향이 홋카이도의 오타루이기 때문이다. 초밥집은 일본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이처럼 의미를 부여한 식도락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매니아 여행자들의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기만화이며 드라마로도 제작돼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고독한 미식가' 역시 테마형 투어상품으로 개발됐다.
'고독한 미식가'는 도쿄 내 대중식당들을 배경으로 다양한 음식 맛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일본여행자들이 작품 속에 소개된 식당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일이 많았다.
여행상품 개발에 테마여행 전문 여행사 '투어버킷'과 함께 원작만화의 국내 출판사인 '이숲'도 참여해 이색적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유명 맛집들을 여행 참가자들이 직접 골라 방문하는 일정으로, 사전예약을 통해 불필요한 대기시간 없이 식사할 수 있는 데다 식사 외 나머지 시간은 취향껏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해당 여행상품을 기획한 하나투어 커뮤니티영업팀 고욱 팀장은 "관광지가 아닌 맛집을 기준 삼아 일정을 구성한 미식여행상품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특색 있는 테마여행을 계속 확대하며 여행이 주는 다양한 가치들을 조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나투어는 앞선 3월 말에도 영국드라마 ‘셜록’ 배경지를 방문하는 현지투어상품을 론칭한 바 있다. 드라마 마니아들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답게 런던은 물론 브리스톨, 카디프, 웨일즈 등 개별여행으로 찾기 힘든 지역들도 다수 여행일정에 포함했다.
(데일리팝=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