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코로나 시국의 속도감이 사회전체에 피로감을 주고, 회복국면에 접어든 패션시장이지만 코로나 이전의 속도감 있는 성장과 변화를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제 급격해서 불안했던 사회적 변화의 속도는 안정적으로 숨을 고르고, 여전히 2019년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패션시장은 이전의 규모수준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위해 힘껏 페달을 밟아야 할 때이다. 그래서 느리거나 빠르게 변주한 이후 다시 이전의 빠르기로 돌아가라는 의미의 음악 기호 ‘A TEMPO(아템포)’를 2022년 키워드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특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션업의 숙명은 떠오르는 메타버스에서 격전이 예상된다.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은 실재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며, 실물 없는 가상세계에서도 희소성과 차별화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디지털 세계를 살아가는 현재의 소비자들은 직접 입고 경험할 수 없는 가상세계의 패션에도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미 광고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메타 휴먼 모델들에게 익숙한 MZ소비자들은 제페토 플랫폼 안에 구찌의 가상 스토어 구찌빌라에서 들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신상백을 구입하고 있으며, 버버리와 돌체앤가바나도 블록 체인 기반 아래 디지털 컬렉션을 사고 팔 수 있도록 NFT 컬렉션을 선보이거나 준비 중이다.
직접 신을 수 없지만 희소성을 가진 한정판 스니커즈 역시도 NFT로 거래 가능한 메타버스 내 인기 아이템으로 부상 중이다. 나이키도 가상 패션전문 NFT스튜디오인 RTFKT(아티팩트)를 인수하며 NFT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해외 명품에서 촉발된 메타버스 경쟁은 곧 국내에서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진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인접 영역으로 흩어지고 있는 지금, M&A를 통해 전문적 영역을 벗어난 신사업 진출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① Recovering Fashion Market : 회복 중인 패션 시장
장기화된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2021년 패션시장은 소비자들의 보복소비 심리와 맞물려 회복 국면을 보였다. 백화점 업계는 명품 매출을 기반으로 크게 성장,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한 ‘1조 클럽’ 점포 수가 전년비 두 배 수준인 10개 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까지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던 패션업계는 명품과 패션 상품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회복하면서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3분기 호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올 10월 누적 기준 패션(의복/신발/가방 합산) 소매 판매액은 약 57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3% 성장했고, 2020년 규모가 전년비 약 18% 역신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아직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삼성패션연구소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보여지는데, 올해 패션시장 규모는 전 복종에서 일제히 플러스 성장을 보이며 전년비 4.4% 성장한 약 37조 규모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20년 11.1% 역신장한 점을 감안하면 아직 2019년 수준을 하회하는 수치이다.
② Experience-based Retail Therapy : 경험 기반, 리테일 테라피
최근 오픈한 대형 리테일 공간들은 규모적으로 대형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판매 공간을 줄여 밀도있는 브랜드 경험 공간, 휴게 공간, 문화 공간 등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수도권 최대 규모로 오픈한 더현대서울은 영업면적 중 절반을 실내 조경, 고객 휴식 공간으로 꾸몄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쇼핑과 여가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스테이플렉스(Stay+Complex)’를 지향, 스트리트 쇼핑몰과 백화점을 결합한 형태에 예술, 문화, F&B 등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선보였다.
한편,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는 ‘시간도 머물고 싶은 공간’이라는 컨셉 하에 인근 산과 호수를 활용해 자연친화적 공간을 연출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대형몰 외 다양한 공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종로구 북촌에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와 오설록 티하우스를 오픈했는데, 판매보다는 체험에 초점을 두고 상품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논픽션은 해운대 대림맨숀에 제품을 프라이빗하게 시향하고 테스트해보는 공간을 마련, 우연한 공간에서 고객들이 상품을 오롯이 즐기도록 배려했다.
③ Shopper-tainment : 쇼핑의 재미, 쇼퍼테인먼트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쇼핑 과정 자체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쇼퍼테인먼트’ 개념이다. 오프라인 매장이 주가 되었을 때는 매장 내 즐길거리 요소를 배치하는 전략을 일컫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채널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급속하게 이동함에 따라 온라인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활발하다.
과거 온라인 채널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접속하는, 목적형 소비의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평소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다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하고 플랫폼에 접속해 구매에 이르는 발견형 소비, 이른바 카우치 트래킹(Couch Tracking)형 소비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찌감치 콘텐츠 커머스에 주력한 한섬은 웹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 ‘바이트 시스터즈’를 제작하고 영상 콘텐츠 제작에 힘을 싣고 있으며,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세사패TV를 통해 ‘배달의 프로들’, ‘화보맛집’ 등 예능 콘텐츠를 제공하며 넉 달 만에 10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게다가 사내 직원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비공식 유튜브 채널 ‘알꽁티브이’는 임직원 출근룩 컨텐츠로 인기이다.
기업명이나 제품명을 노출하지 않고 자사의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노출해 몰입감을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LF는 현재 라이브방송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온라인사업부 내에 라이브·미디어 커머스팀을 신설하고 향후 자체 제작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콘텐츠 커머스 역량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④ Increasing Pop-up Store : 증가하는 팝업스토어
전시와 체험 등 인증샷을 부르는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팝업스토어가 소셜미디어(SNS)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백화점 내 팝업스토어 운영 사례도 크게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명품 팝업 매장 운영 건수가 4회에 불과했던 전년에 비해 올해는 15회로 크게 증가했으며, 신세계 강남점 1층 중앙광장에 위치한 ‘더 스테이지’ 역시 내년 1분기까지 팝업스토어 일정이 꽉 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화점 외에도 핫한 플레이스를 중심으로 팝업스토어가 빈번하게 열렸는데, 소위 명품 3대장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차례로 성수동에 팝업 공간을 열었다.
지난 10월에는 젠틀몬스터의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가 신제품 출시와 함께 성수동에서 전시와 캠페인을 펼치면서 체험형 미디어 아트 등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낳았고, 11월에는 한섬이 시스템 첫 팝업 스토어를 성수동에 오픈했다. 한편 버버리는 제주에 ‘이매진드 랜드스케이프 제주’를 선보이며 제주도의 아름다운 환경을 배경으로 브랜드의 철학을 전달하고 몰입형 브랜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압도적 규모의 경험 전시관을 선보였다.
⑤ License with Well-known Brand : 라이선스로 돌아온 유명 브랜드
가까운 과거에서 가져온 익숙한 것들이 새로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지금, 누군가에겐 익숙한 추억이고 더 젊은 세대에는 낯선 오래된 유명 브랜드들이 ‘K-라이선스 브랜드’로 다시 등장했다.
90년대 인기 브랜드였던 마리떼프랑소와저버는 마리떼라는 이름으로 재런칭 한지 1년 만에 100억대 브랜드로 도약했고, 데님 브랜드 리(LEE)는 재런칭 직후부터 무신사 판매랭킹 10위권에 진입하며 라방을 통해 한 시간 만에 1억 5천만원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뉴트로 브랜드의 인기가 뜨겁다. 잊혀졌던 브랜드의 재런칭 사례는 노티카, 트루릴리전, 스톰을 비롯해 전개사를 변경한 챔피온까지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 유명 브랜드의 익숙한 로고를 라이선스화해 소비자들에게 한층 쉽게 다가가고자 하는 전략은 패션 브랜드 뿐 아니라 이종업계까지 확장되고 있다. 아웃도어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성공 이후 올해에는 코닥, 빌보드, CNN 등 패션과 접점이 없는 유명 브랜드들이 패션 브랜드로 론칭하고 있다.
⑥ Insanity of Revenge-spending : 보복 소비의 열기
여행도 외출도 자유롭지 않았던 2년을 보낸 후, 보상심리로 인한 패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샤넬, 롤렉스 등 최고급 명품 매장에서의 오픈런과 매장 밖의 긴 대기줄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유로모니터 추산 올해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전년비 4.6% 성장한 약 17조원으로 세계 7위 수준이다. 특히 올해에는 핸드백 중심 구입에 그치지 않고 의류, 시계, 보석, 신발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쳐 규모가 성장한 점이 특징이다.
백화점 실적을 견인한 카테고리 역시 해외 명품이었다. 지난 10월 기준 백화점 주요 3사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 비중은 31.8%로 전체 매출의 약 1/3 가량을 명품 매출로 볼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한 명품 구입 역시 증가세로,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올해 2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명품 시장은 소비층을 확대해 나가며 규모를 키우고 있으며, 머스트잇, 트렌비 등 명품 플랫폼의 빠른 성장을 견인했다.
또 기존 명품 브랜드 외에도 새로운 럭셔리군이 등장했다. MZ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이들 브랜드는 ‘신명품’이라고 불리며, 힙한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과 명품 대비 접근 가능한 가격대가 특징이다.
⑦ Enabling Small Brand : 강소브랜드의 가능성
파편화된 소비자 취향과 남과 다른 희소성을 추구하는 경향들로 인해 소비자들이 매스 브랜드 대신 스몰 브랜드를 눈여겨보기 시작한지 오래다. 특히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장한 신진 브랜드들이 강소브랜드로 불리며 패션계 지각변동을 이끌고 있다.
인기 있는 스몰 브랜드가 모인 플랫폼은 고객 유입률과 거래액이 증가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온라인 패션 시장 내 주요 M&A 대상이 됐다. 지난 4월 카카오는 지그재그를 인수하며 카카오스타일을 출범했고, 5월에는 SSG닷컴이 W컨셉을 인수, 8월에는 무신사가 스타일쉐어와 29cm를 인수하는 등 굵직한 M&A 건들이 있었다.
⑧ Niche on Vertical Platform : 틈새시장 노린 전문 플랫폼
온라인 쇼핑 시장이 지속 성장하는 가운데 취향 기반 소비 경향이 두드러지는 패션 영역에서는 특정 타깃, 특정 제품에 집중하는 버티컬 플랫폼들이 증가하고 있다. 무신사, W컨셉 등 1세대 플랫폼들은 비패션 영역까지 카테고리 확장을 통해 유사한 취향을 보유한 기존 타깃 소비자를 록인(lock-in)하면서 거래액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한편, 새롭게 런칭하는 플랫폼들은 기존의 강자와 승부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서며 틈새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특히 백화점에서 밀려난 4050 여성 패션 브랜드들을 입점시킨 퀸잇, 포스티, 푸미, 모라니크 등 중년 여성 타깃의 플랫폼들은 인터넷 쇼핑에 능숙해진 중년 여성 소비자들을 끌어안으며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 중 퀸잇은 올해 초 대비 11월 매출액이 20배 가량 증가하며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고,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무신사 역시 내년 상반기에 4050 여성을 대상으로 한 앱 런칭을 기획하고 있다. 명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플랫폼 역시 온라인 패션 시장 내에서 틈새를 노리며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⑨ Club Sports, Golf & Tennis : 골프&테니스, 클럽스포츠의 부상
지난해 레깅스를 입고 산을 찾았던 MZ세대 아웃도어 매니아들은 올해 골프와 테니스 등 잔디 위에서 즐기는 클럽 스포츠로 시선을 돌렸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레저백서 2021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0~30대 골프 인구는 115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35% 증가했다.
비대면 시대, 자연을 즐기며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레저 스포츠에 대한 선망이 증가하며 MZ세대 골프인구가 빠르게 증가했고, 기존 골프 브랜드 물론 코오롱Fnc의 지포어, 말본 골프 등의 신진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었다. 골프웨어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도산공원 인근은 올해 가장 활기 넘치는 상권 중 하나로 부상하기도 했다.
골프와 유사한 스타일을 보이는 테니스는 복장 측면에서 골프보다 라이프스타일로 접근하기가 용이하다. 이미 테니스에 기반을 둔 라코스테, 프레드페리 등의 브랜드들이 주요 캐주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⑩ Easy Fashion to Comfort : 편안함이 핵심인 이지 패션
코로나 시국을 지나오며 편안함이 의류 선택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홈웨어와 외출복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적어도 패션을 대하는 소비자의 태도가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해시태그 #오하운(오늘하루운동)이 부상하면서 맨투맨과 트레이닝 팬츠는 일상복 영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챔피언, 스포티앤리치 등 로고플레이를 더한 스웻 전문 브랜드들도 주목받았다.
휴식과 업무, 간단한 외출에도 착용 가능한 편안하면서도 보다 더 세련된 상품개발이 이어졌다. 여유로운 오버핏과 루즈한 실루엣, 신축성 있고 착용감 좋은 니트 소재가 두각을 나타냈으며, 북유럽 감성의 따뜻하고 포근한 니트 소재의 원마일웨어를 제안한 코텔로 등 새로운 카테고리를 노리는 브랜드들도 선보였다.
기존 브랜드들도 활동성과 편안함을 기본으로 참신한 디자인을 더하는 노력을 지속했다. 어떤 옷을 입을지에 대한 고민을 줄여주고 단순하게 스타일링 할 수 있는 원피스, 상하의 한벌로 구성된 매칭 세트도 이지 스타일링 아이템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