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모씨는 지난해 구로구의 한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연식이 오래된 건물이긴 했지만, 구조와 평수 등이 모두 마음에 들어 계약을 진행했고 실제 거주 만족도도 높았다. 하지만 몇 달간 비워져 있던 옆집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서 악몽은 시작됐다.
벽 너머 옆집 세입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옆집 세입자는 잊을 만하면 친구들을 불러 아침 동이 틀 때까지 시끄러운 술판을 벌였다. 새벽 내내 이어지는 고성방가에 잠 못 이루던 이씨는 얼마 전 옆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이마저도 혼자서는 무서운 탓에 남자친구를 불러 대동해야 했다. 한바탕 말다툼이 이어진 끝에 밤 12시 이후로는 서로 조심하자는 데 합의했지만, 언제 다시 시끄러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잠드는 것이 두렵다고 토로했다.
층간 및 벽간소음 문제가 매년 화두에 오르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2012년 8795건이었던 층간소음 전화상담은 지난해 4만6596건으로 10년새 5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제한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소음 사례 역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웃사이센터 전화상담 건수는 2019년 2만6257건에서 2020년 4만2250건으로 1.6배 가량 확대됐다.
앞서 이씨의 사례처럼 대화를 통해 이웃과 원만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소음문제로 이웃끼리 갈등을 빚다 끝내 강력범죄로 이어진 사례는 잊을 만하면 보도되곤 한다. 층간소음에 항의했다가 되려 보복범죄를 당할까 참고만 산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 층간·벽간소음,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만약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 이웃집에 방문해 문을 두드리거나 보복 소음을 내는 경우 법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소음 피해를 인지했다면 점진적인 대응에 나설 것을 권한다. 먼저 관리실이나 집주인 등 관리주체가 있다면 민원을 넣는 것부터 시작하자. 새로 이사를 온 이웃이라면 나로 인해 소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중재할 수 있는 관리주체가 없다면 정중한 내용의 쪽지를 붙여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민원이나 쪽지 등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경찰을 통해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 만약 전화 통화가 부담스럽거나 이웃의 보복이 염려된다면 문자 메시지로도 신고 접수가 가능하다.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나 이웃사이센터 등에 관련 상담 및 조정을 요청할 수도 있다. 서울시에 거주 중이라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층간 소음 상담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 내의 소음만 층간소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 주상복합, 오피스텔 등은 공동주택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이웃사이센터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현재 거주 중인 원룸이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있다면 마찬가지로 국가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 층간·벽간소음, 개인의 문제로 둘 건가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층간소음 사후확인제 등의 내용이 담긴 ‘주택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올해 7월부터는 아파트를 짓고 난 뒤 층간소음 검사 실시가 이뤄질 예정이다.
관련 토론회도 국회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2일 하영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층간소음 원인 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지난해 12월에도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층간소음 개선 정책토론회가 개최된 바 있다.
대선 주자들도 층간소음에 관련한 공약을 내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층간소음 관리기준을 강화해 ‘층간소음 제로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주거환경 개선과 층간소음 없는 주거지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동주택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주거시설은 사각지대로 남겨져 있다. 1인가구의 경우 근린생활시설이나 쪼개기 원룸 등 불법 주거시설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즉, 층간소음 사각지대에 1인가구가 놓이게 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층간소음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이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뒤따라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