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의 수리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리권이란 소배자가 구매한 전자기기 제품에 대해 자유로운 수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수리보증을 장기간 요청할 권리, 수리방식 및 업체를 선택할 권리, 수리에 필요한 부품과 장비 등에 접근할 권리, 수리가 용이한 제품을 선택할 권리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지금 스마트폰이 고장났다면 십중팔구는 공식 AS센터로 향해 제조사가 제시하는 금액대로 수리비용을 지불하고 고치게 된다. 특히 애플의 경우 사설 수리를 받은 기기에 대해서는 보증 서비스를 제한하기 때문에 사설 수리센터 이용은 사실상 금지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수리비가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도 항변할 수 없고, 부품이 없다고 하면 수리 시도도 못해보고 버리게 된다. 이 같은 제조사의 관행이 결국 쉬운 폐기와 빠른 생산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수리권은 소비자의 선택권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주요한 이슈다. 제조사가 수리의 자유를 제한할수록 버려지고 새로 생산되는 전자기기가 늘어나 결국 탄소배출량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지난 2019년부터 수리권 규정을 도입,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전자제품 수명을 연장하고 손쉬운 수리가 가능한 제조 공정을 권고했다. 작년 3월엔 향후 10년간 예비부품 생산과 수리설명서 제공을 골자로 하는 수리권 보장법을 시행했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해부터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5종에 ‘수리가능성지수’를 표기하도록 했으며, 영국은 일부 전자기기를 대상으로 최대 10년간 예비 부품을 제공하는 법을 도입했다.
미국 역시 수리권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미국 경제의 경쟁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을 통해 자가 수리 또는 제3자를 통해 수리하는 경우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AS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지난해 소비자 수리권 보장법이 발의된 바 있다. 해당 법안에서는 휴대폰 제조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휴대폰 수리에 필요한 부품, 장비 등의 공급·판매를 거절 혹은 지연하는 행위, 휴대폰 수리를 제한하는 소프트웨어 등을 설치·운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제조사의 해법은 ‘자가수리 프로그램’
수리권 보장 요구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분주해진 모습이다. 업계가 내놓은 대안은 ‘자가수리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말 애플을 시작으로 삼성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차례로 자가수리 프로그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근 애플은 미국 현지에서 아이폰용 정품 교체 부품과 자가수리용 도구, 수리 설명서 등을 제공하는 ‘자가수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애플은 해당 프로그램을 올해 말 유럽에서도 출시할 예정이며, 차츰 적용 국가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현재 자가수리 프로그램 대상 제품은 아이폰12, 아이폰13, 아이폰SE 3세대 등으로 제한돼 있으며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등 주요 부품을 비롯한 200여개의 부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자가수리를 위한 도구 세트도 대여할 수 있다.
삼성전자 미국지사는 올 여름부터 분해 전문 웹사이트인 아이픽스잇(iFixit)과 협업을 통해 자가수리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대상 제품은 갤럭시 S20~21과 갤럭시 탭S7+로 한정됐다. 삼성은 해당 프로그램의 국내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진 않았다.
구글 역시 올해 말 영미권 국가를 대상으로 픽셀 자가수리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상 제품은 2017년 출시 모델인 픽셀2 시리즈부터 픽셀6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