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 금융권 등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23일 국민의힘과 국토교통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등은 전세사기 대책 논의를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당정은 임차 주택 경매시 피해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시적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거주 중인 임차 주택을 낙찰받길 원하는 이들에게는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낙찰시 관련 세금 감면, 장기저리의 융자 지원 등의 혜택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매입을 원하지 않지만 사정상 이사를 가기 어려운 피해자 등에 대해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피해자를 대신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고 해당 주택을 매입, 공공임대 형식으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특별법에 담기로 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다음 달부터 전세계약 만료로 잔여 전세 대출금까지 갚아야 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10년간 나눠 대출을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택금융공사(HF) 등 전세대출을 보증했던 보증기관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잔여 채무를 인수해 은행에 대신 상환하고, 피해자들은 보증기관에 대출금을 장기 분할 상환하는 방식이다. 통상 2년 만기 일시 상환방식인 전세대출의 상환 기간을 늘려 대출금 상환 부담감을 덜도록 한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의 금융지원도 추진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금융지원에 적극 동참하겠다며, 전세사기 피해자가 저축은행에 전세자금 대출이 있는 경우 이자율 조정 등을 검토할 계획임을 밝혔다.
우리금융그룹은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그룹 차원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책 ‘우리가(家) 힘이 되는 주거 안정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가구당 1억5000만원 한도, 총 2300억원 규모로 전세자금 대출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시작으로 신한·국민·하나 등 시중은행들도 저마다 전세사기 피해자 자체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모두 전세사기 주택의 경·공매 유예와 피해자들에 대한 신규 대출 금리를 감면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 전재산 잃었는데…대책은 빚 늘리기?
피해자 구제책이 금융지원에 집중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미 전재산을 잃은 이들에게 빚을 더 늘려라 식의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대학 신입생, 취업준비생 등 부동산 계약 경험이 미숙하고 자기 자본이 부족한 청년층에 집중돼 있다.
경찰청의 전세사기 특별단속 결과를 보면 송치된 사건 기준 피해자는 1705명, 피해액은 3099억원에 달했다. 피해자들 중 33.4%(570명)은 30대, 18.1%(308명)은 20대로 피해자 2명 중 1명 이상은 2030 청년이었다.
청년 피해자는 갖고 있는 전재산을 전세자금으로 밀어넣었거나 기존 전세보증금을 대출로 마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저금리의 대출을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 아닌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는 구조이기에 이들을 위한 피해구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재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는 지난 23일 입장문을 통해 “전세사기는 정부의 지속적인 대출 확대와 묻지마 보증 등 정부 책임도 분명하다”며 “정부가 고통을 분담하고 범죄 수익 환수 등으로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방안은 보증금 채권의 공공매입”이라며 “LH의 매입 임대로는 보증금 채권 매입 방안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 매입 기관이 평가를 거쳐 적절한 금액에 임대차 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매수해 피해자에게 선보상을 한 뒤 채권 매입 기관이 경·공매, 매각 등의 절차를 통해 이를 회수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또 “전세사기 피해 유형이 다양하므로 보증금 채권매입, 피해 주택 매입, 우선 매수권 부여 방안을 모두 제도화해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의 주거지원 및 금융지원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인 ‘전세사기 피해확인서’ 발급률이 저조한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인천시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가 1월3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피해확인서를 발급한 피해자는 22명으로 전체 이용자(832명)의 2.6%에 그친다.
서울센터 역시 지난해 9월28일 개소한 이후 이달 12일까지 센터에 방문한 4160명 중 109명(2.6%)만 피해확인서를 발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확인서는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거나 경·공매 낙찰로 임차권이 소멸되는 등 세입자가 집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에 한정해 발급된다.
전세사기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았거나 경·공매에서 낙찰되지 않은 상태라면 발급이 불가하다. 당연히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