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먼저 구제한 뒤 후 회수하는 내용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최근 야권 주도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국토위는 지난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은 전세사기 피해 보증금 금액을 정부가 먼저 보상한 뒤 추후 경매 절차 등을 통해 정부가 자금을 회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선구제의 기준은 현행 임대차보호법에 명시된 최우선변제금 기준인 30%로 잡았다. 단서조항으로 채권매입 기관은 해당 기준 이상의 채권을 매입하도록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중 임차보증금 한도는 현행 3억원에서 7억원으로 상향하고 외국인 임차인도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신탁 전세사기 주택의 경우 법원이 주택 명도소송을 1년간 유예·정지할 수 있도록 하고 강제집행을 일시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례를 신설했다.
현행 특별법은 피해주택 경공매 시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이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양도할 경우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한 간접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외에도 최우선 변제금을 못 받는 임차인에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고 저리 주택 구입 자금 대출, 전세대출 최장 20년 분할 상환, 경공매 대행 및 비용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와 야당은 특별법 시행 이전부터 최근까지 선구제 후회수를 주장해 왔다. 전 재산을 잃고 남아있는 전세대출을 갚아야 하는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한들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실제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 등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가구 중 정부의 지원대책을 받고 있는 이들은 17.5%에 불과했다. 특별법 시행 이후 6개월간 LH의 피해주택 매입실적도 전무하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구제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선구제 후회수를 반대해 왔다. 특별법에서도 선구제 후회수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에 지난 18일 야4당이 선구제 후회수 지원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21일에는 피해자 단체가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삭발에 나서기도 했다.
피해자 단체들은 “특별법이 제정되고 6개월이 지났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현실도 모르고 만든 지원대책이 당연히 도움이 될 리가 없다”며 “피해자로 인정 받아도 은행이나 정부기관을 찾으면 ‘당신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답변뿐이다. 그마저도 다른 기관으로 떠넘기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구제 후회수가 안 된다면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자신들만의 대안을 가져오라”며 “최소한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피해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개정안 단독 통과를 두고 여당은 ‘총선용 보여주기’라며 반발했다.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민주당도 사적자치 영역의 피해를 국가가 국민의 혈세로 직접 보전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피해자들의 아픔을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의회 폭거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특별법 시행 이후 6개월간 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는 총 9367명에 달한다. 전체 신청 사례 중 82.7%가 가결되고 8.3%가 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