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흘 만에 입장 철회…대통령실까지 사과 나서
정부가 80개 품목에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이 없는 해외제품에 대해 직접구매(직구)를 금지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사흘 만에 철회했다. KC 미인증 직구금지 발표가 이뤄진 이후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과 직면했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유모차·완구 등 어린이 제품(34개)와 전기 온수매트 등 전기·생활용품(34개)에 대해 KC인증이 없으면 해외직구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가습기 소독제 등 생활화학 제품 12개 품목에 대해서도 신고·승인되지 않은 경우 직구를 금지한다고 했다.
해당 대책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해외 직구를 통해 대거 수입되면서 소비자와 국내 기업,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방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의 이커머스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일명 ‘알테쉬’를 통해 국내로 들어오는 중국산 저가 제품이 급증했는데 일부 제품에서 인체 유해물질이 잇따라 다량 검출됐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해외직구 거래액은 2021조 5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8000억원으로 2년간 33%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각종 부작용이 유발되기도 했다. 해외직구를 통한 가품 반입 적발 건수는 2021년 2만9000건에서 2022년 4만5000건으로 늘었고, 일부 제품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월 관련부처 14개 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해외직구 종합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 수립에 나섰다. 당초 정부는 소비자의 안전확보와 피해 예방 및 구제강화, 국내 기업 경쟁력 강화 등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중국 제품의 안전성 검증을 강화하고 직구 수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이 설정됐다. 직구로 들어오는 외국산 제품에는 한국 세제와 인증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국내 유통업계와 소상공인들이 역차별로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정책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정책 발표와 동시에 소비자 불만 폭주
정부, 사흘 만에 '입장 철회'
정부의 발표가 이뤄진 직후 소비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KC인증과 관련한 비판이 쏟아졌다. 대학 연구실이나 소규모 공장 등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기계 부품을 해외 직구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일이 KC인증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KC인증은 안전·보건·환경·품질 등 여러 분야를 단일화한 국가인증통합마크로, 국내 안전 기준을 충족한 제품에 부여된다. 취득 비용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으로 높은 데다 정기적으로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기업이 KC인증을 취득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KC인증 여부가 직구의 기준이 되면 해외 기업이 KC인증을 받지 않고 한국으로의 수출을 포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한국도 갈라파고스화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갈라파고스화는 자신들의 표준을 고집하다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주류, 골프채 등 기성세대들이 애용하는 물품들이 이번 대책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정부는 정책 발표 다음 날인 지난 17일 “품목 소관 부처가 해외 직구 제품에 대한 위해성 검사를 집중적으로 실시한 뒤 6월 중 실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반입을 차단할 계획”이라며 “반입 차단 시행 과정에서도 국민 불편이 없도록 세부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소비자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19일 관련 브리핑을 열고 “안전성 조사 결과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6월부터 반입을 제한해 나갈 계획”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지금과 같이 직구가 가능하되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을 추후 공개하면 해당 제품에 대한 직구만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다음날인 20일 대통령실은 “최근 해외직구 관련한 정부의 대책 발표로 국민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데 대해 사과드린다”며 “KC인증을 받아야만 해외직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치이 국민 안전을 위한 것이라 해도 소비자 선택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저렴한 제품 구매를 위해 애쓰는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데 대해 송구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