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서 상속·신탁 상품이 활성화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만큼 신탁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이슈분석 리포트 ‘일본 신탁시장의 특징과 시사점’에서는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
신탁은 일정한 목적에 따라 재산의 관리와 처분을 타인에게 맡기는 법률관계를 말한다. 신탁 설정자(위탁자)가 신뢰할 수 있는 신탁 인수자(수탁자)에게 재산을 맡기고 위탁자가 지정한 자(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행위를 하게 하는 계약이다.
신탁은 재산 유형에 따라 금전신탁과 재산신탁으로 나뉜다. 금전신탁 내에서 수탁자의 운용재량권 여부에 따라 특정금전신탁과 불특정금전신탁으로 구분된다. 한국은 신탁 가능한 재산이 7개로 한정돼 있는 반면, 일본은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일본 신탁시장은 2023년 9월말 기준 수탁고 기준 1569조엔(약 1경4000조원)에 달한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우리나라(2023년말 1302조원)의 10배 수준이다.
2000년 초만 하더라도 200조엔 수준이던 일본 신탁시장은 포괄신탁과 재신탁 허용 및 재신탁은행 등장으로 연평균 8%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확장됐다.
포괄신탁은 신탁계약 하나에 복수의 재산을 맡기는 방식을, 재신탁은 수탁자가 신탁재산 관리 등의 신탁 업무 일부를 다른 신탁업자에게 재위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포괄신탁을 종합재산신탁이라 부르며 재신탁은 실질적으로 불허하고 있다.
일본의 상속·승계 신탁시장 현황은?
일본에서 개인 대상 상속·승계 목적의 신탁은 주로 금전신탁 방식이다. 일본 신탁시장에서 개인의 상속·승계 신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만 자산 이전에 부합하는 다양한 상속·승계 신탁 상품은 활성화되는 추세다. 2000년대 일본 당국은 신탁의 자산 이전 기능 강화를 골자로 신탁업법 및 신탁법을 개정했다. 이후 신탁은행은 유언 관련 겸영업무를 넘어 신탁 계약인 유언대용신탁 및 수익자연속형 신탁 등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유언대용신탁은 2023년말 누적 가입 24만7000건을 기록하며 상속 대비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 정부의 세대간 자산 이전 독려를 위한 제도 추진을 바탕으로 조부모의 손자녀 교육자금 증여신탁, 결혼·양육자금 증여신탁 등도 출시됐다. 최근에는 치매 신탁, 1인 신탁 등 특화상품도 등장했으며 기존 신탁상품에 고령자 특화서비스가 추가되는 등 소비자 선택권이 확장되고 있다.
일본의 금전신탁은 수탁자가 운용 재량권을 가지는 불특정(지정) 방식 및 운용 방법이 동일한 위탁자들의 신탁재산을 합쳐 운용하는 합동운영 방식이 가능하다. 투자성이 낮은 금전신탁상품에 대해서는 예금보험제도의 보호를 받는 원금 보장 계약도 포함시킬 수 있다.
이같은 특징이 상속 및 승계 목적의 신탁 상품에 적용되면 수수료를 낮게 책정하고 안전하게 운용되는 동시에 원금도 보장되는 신탁 상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에는 가족 간 민사신탁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신탁 재산에 제한이 없어 소액, 다양한 재산 등을 신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수료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 생전 증여의 대체재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민사신탁은 개인간 계약으로 이용 건수 파악이 어렵지만 일본 내 부동산 신탁에 따른 부동산 신탁등기 건수가 최근 5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보고서는 국내에서도 세대 간 자산이전 지원을 위한 신탁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국내 신탁시장은 금융상품 판매 목적의 금전신탁과 부동산 공급확대를 위한 부동산신탁 중심으로 발정해왔으며 자산이전 목적의 신탁시장은 초기 수준이다. 국내 신탁시장은 2023년 말 기준 수탁고 기준 1302조원을 기록한 반면, 주요 은행의 유언대용신탁 규모는 3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국내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가까운 미래에는 상속 및 승계 등 세대간 자산이전이 본격화 될 것이며 신탁의 역할이 더욱 강조될 전망”이라며 “국내에서 신탁이 상속·승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기에 한계점이 존재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