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에 시장 혼선 여전
정부가 당초 2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를 시행 3일 전 유보하기로 했다. 실수요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실수요자 사이에선 위기를 피했다는 안도감이 감지되는 한편, 정부가 현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규제로 시장의 혼선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토교통부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이 21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디딤돌대출 규제를 잠정 유예한다고 밝혔다.
디딤돌대출은 연소득 6000만원 이하(신혼부부 8500만원 이하)의 무주택자들이 5억원(신혼 5억원) 이하의 주택 구입시 2~3%대 저금리로 빌려주는 상품으로, 대표적인 서민 정책대출로 꼽힌다.
국토부는 앞서 지난 11일 금융위원회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시중은행과 만나 디딤돌 대출 취급 제한을 요청했다. 일명 ‘방 공제’로 불리는 소액 임차인 대상 최우선변제금(서울 5500만원)을 대출금에서 제외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요청대로라면 서울에서 3억원짜리 주택 구입시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기존 2억1000만원(LTV 70% 기준)에서 1억550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외에도 생애최초 주택 매수자의 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80%에서 70%로 축소하고, 아직 등기되지 않은 신축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후취 담보 대출’은 아예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서민전용 대출에 대한 규제를 유예 기간조차 두지 않고 갑자기 시행하겠다고 하자 실수요자들은 혼란과 불안에 빠졌다. 특히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를 앞둔 예정자들은 대출을 아예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돼 강력히 반발했다.
정책대출까지 규제대상 오른 이유는
정부가 정책대출을 규제하려 든 것은 가계대출 증가세 때문이다.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금융권 가계대출은 5조2000억원이 증가해 전월(9조7000억원)에 비해 증가폭이 절반가량 줄어든 반면, 정책대출은 오히려 늘었다.
디딤돌과 버팀목 등 정책대출의 경우 지난 8월 3조9000억원 증가에 이어 9월에도 3조8000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가계대출 증가 주범의 하나로 정책대출이 거론됐다.
실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은행권을 집행된 정책대출은 지난해부터 은행권 주담대의 73%를 차지, 가계부채 확대를 이끌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부가 정책금융 공급을 확대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이후 44조원이 공급되는 등 가계대출 증가세가 커지고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올해 초 해당 상품의 공급을 중단하고 소득기준과 주택가격 기준 등을 환원시켰다.
올해는 저출생 대책 차원에서 소득기준과 대상주택 조건을 높인 신생아특례대출을 출시했다. 디딤돌대출에 포함되는 신생아특례대출 잔액은 2월 말 1967억원에서 지난 8월 4조1315억원까지 불었다.
이같은 정책대출 확대는 집값 상승을 불러일으키고 가계대출 관리 어려움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역시 이를 만회하기 위해 디딤돌대출 규제를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실수요자들의 반발로 잠정 유예 됐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 혼선이 수요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언제 정책이 바뀔지 몰라 불안한 이들이 정책대출을 이용할 수 있을 때 집을 사겠다고 나선다면 오히려 가계대출의 증가세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