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세계 명품 업계가 AI로의 체질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출하량을 예측해 민첩성을 높이는가 하면 제품 디자인 등에도 AI를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포착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고가품과 기술, AI: 조용한 혁명’ 보고서를 통해 유명 명품산업 협회인 프랑스의 ‘코미테 콜베르’Comite Colbert)와 공동 진행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코미테 콜베르는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 90여곳이 가입한 단체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미테 콜베르 회원 브랜드 중 38%가 ‘향후 3년간 AI를 10대 중점 사업 중 하나로 삼고 있다’고 응답했다. ‘AI가 3대 사업에 속한다’고 답변한 곳도 3%를 차지했다. ‘주요 사업 중 하나로 AI를 추진 중’이라는 브랜드는 44%에 달한다.
반면 ‘AI는 중요 목표가 아니다’라고 밝힌 곳은 16% 수준이었다.
보고서는 “연매출 4조4000억원 이상의 대형 명품 브랜드는 AI가 중점 사업 중 하나라고 답한 비중이 78%에 달했다”며 “조사에 응한 브랜드들은 평균 5개 이상의 AI 도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명품업계는 AI를 어떻게 활용할까
AI의 사용처(use case)를 묻는 질문에서 60%의 브랜드가 ‘판매량 예측 도구’를 도입 또는 테스트 중이라고 밝혔다. ‘직원 역량 강화를 위한 AI 기반의 내부 지식·정보 관리’에 활용한다는 응답도 53%로 집계됐다.
이와 함께 ‘마케팅 콘텐츠의 자동 생성’과 ‘재고 할당’(각각 50%), ‘판매 직원과 고객 사이의 개인화 소통’(46%)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이외에도 ‘모조품 단속’(35%), ‘제품 디자인 활용’(34%), ‘챗봇 도입’(29%), ‘운영 자동화’(28%) 등이 언급됐다.
보고서는 다만 명품 업계의 AI 활용 실태에 대해 ‘쏠림’ 현상이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가령 판매량 예측이나 재고 할당 등 현재 활용도가 높은 AI는 2010년대에 개발된 빅데이터 기반 기술로 시장의 검증과 신뢰도가 충분히 쌓인 상황이다.
반면 챗GPT로 대변되는 최신 생성 AI의 경우, 마케팅 콘텐츠 제작 등 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도입 실적이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명품 산업이 디자인과 사업 노하우 등 지적재산(IP) 보호를 중시하는 경향과 연관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생성 AI를 도입하기 위해선 내부 데이터를 대거 입력해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사 IP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매우 민감한 영역인 제품 디자인과 개발 단계에서도 시제품 시각화 등에 최신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10여년 전 명품업계가 전자상거래 등의 영향으로 큰 디지털 전환을 겪었던 것처럼 AI가 명품산업에 근원적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 4월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발간한 ‘인공지능(AI), 명품 매장의 미래를 바꾸다’ 보고서는 최근 명품 업계의 생성형 AI 활용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명품 업계에서 생성형 AI는 이미 활약 중이다. 스위스 명품 그룹 리치몬트(Richmont)는 구글 클라우드와 함께 A 기반 대규모 고객 데이터를 수집, 고객 맞춤형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버버리(Burberry)는 AI 기반 명품 감별 기업 엔트루피(Entrupy)가 제공하는 이미지 인식 및 인증 서비스를 채택, 위조품을 식별한다. 텐센트(Tencent)와 협력해 첫 소셜 스토어 버버리 오픈 스페이스를 개소하기도 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구글 알파벳의 AI기술 지원을 받아 브랜드별 수요예측 및 재고 관리, 최적 상품 추천 기능 등을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