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멤버 그대로 출연한다면 꼭 다시 하고 싶다’는 네 배우의 바램은 옳았다. 2년만에 다시 뭉친 배우들은 보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연극 '대학살의 신' 무대를 열정으로 뿜어냈다.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송일국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캐미와 하모니는 연극에 몰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2월 19일 오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대학살의 신' 프레스콜이 열렸다. '대학살의 신'은 2017년 만났던 네 배우가 다시 뭉쳐 인간의 본질에 집중한 고급스런 블랙 코미디로, 지식인의 허상을 통렬하게 꼬집는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이다.
연극은 90분동안 배우들의 등장, 퇴장없이 쏜살같이 달린다. 암전이 되면서 배우들이 무대뒤로 퇴장하면서 연극이 끝났음을 인지할 정도로 열연한 배우들의 연기호흡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핑퐁처럼 이어지는 대사들은 배우들의 입을 통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한다. 순간순간 동반되는 배우들의 살아 숨쉬는 표정과 몸짓들은 웃음을 불러일으키고 완벽한 몰입을 만들어낸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11살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아이의 앞니 두 개가 부러진 사건으로 두 부부가 모인다. 때린 소년의 부모인 알렝과 아네뜨 역엔 남경주와 최정원이, 맞은 소년의 부모인 미셸과 베로니끄 역엔 송일국과 이지하가 맡았다.
자녀들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모인 두 부부가 소파에 앉아 고상하고 예의바른 대화를 나누면서 연극은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대화는 어느덧 고상과 교양의 옷이 벗겨진 유치 찬란한 설전으로 변질된다. 그들의 설전은 가해자 부부와 피해자 부부의 대립에서 엉뚱하게도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의 대립 양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잘 숨겨뒀던 민낯을 드러낸다. 막말을 내뱉고 물건을 내던지면서 육단전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수치나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대신 자신들의 밑바닥을 폭발해 내면서 미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등장 인물들을 통해 어느덧 관객 또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속물 변호사 남경주(알랭역)의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부인 최정원(아네뜨역)이 빼앗아 튤립 화병에 빠뜨리는 장면은 극중 짜릿함을 선사한다. 돈을 쫓느라 늘 휴대전화기만 끼고 살던 알랭은 그제서야 바닥에 앉아 아내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장면은 일에 쫓기는 삶을 사는 현대인이라면 공감될만한 장면이다.
한편 연극 '대학살의 신'은 오는 3월 24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데일리팝=임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