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MBC의 한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뉴스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안경을 쓴 아나운서가 무슨 문제냐는 말이 많겠지만, 여성 아나운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안경을 썼다는 점에 있어 한동안 이슈를 끌었다.
실제로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5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안경을 착용한 아나운서가 주목을 받은 이유에 묻자, 응답자들의 48.2%(복수응답 가능)는 '안경 쓴 여성 아나운서를 처음 봐서'라는 의견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회사에 안경을 쓰고 출근하는 여직원이 적다고 대답했으며 적은 편이라거나 거의 없다는 의견도 각각 39.9%, 20.1%로 나타났다. 회사에서 여직원에게 렌즈 착용을 요구하거나 안경을 쓰면 눈치를 준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있다'라고 답한 직장인은 15.8%였다. 이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주로 '안경을 쓰면 외모에 대해 지적한다(75.9%, 복수 응답 가능)'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안경을 쓰면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4.6%나 됐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시력이 나쁜 여직원은 회사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안경 및 렌즈 착용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96.9%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성복장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으나, 안경을 쓴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시선이 가고 있었다.
비단 안경 착용의 유무를 논하는 것뿐만 아니더라도 여자들의 자존심, 혹은 당당한 커리어 우먼의 상징이라 불렸던 '하이힐'의 가치 또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하이힐을 신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KuToo(구투)'운동까지 번지고 있다.
구투 운동은 신발, 고통을 뜻하는 단어인 '구쓰'와 '#MeToo(미투)' 단어를 합쳐 만든 신조어로, 여성에게 하이힐 등 불편한 신발을 신는 것을 예의라는 명목으로 강요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서명운동이다.
이 구투 운동은 배우 겸 작가인 이시카와 유미가 2019년 초 SNS에 올린 글로 시작됐다. 그는 "과거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하이힐 착용을 강요받았다"며 당시 발이 아파 고생했던 경험을 트위터에 토로하며 하이힐 착용 강요를 비판했다. 이 글은 3만 번 이상 리트윗되며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같은 고충을 갖고 있던 여성들의 지지가 이어지자 여성복장 규정 개선을 청원하는 구투 서명운동으로 번졌다.
일본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性) 격차 보고서'에서 항상 하위권을 기록해왔다. 심지어 뷰티·패션·요리 등에서 여성스러움을 평가하는 '여자력(女子力)'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다. 여성들에게 특정 모습을 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일본 최대 노동자 단체로 알려진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連合)가 20세~59세 사이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60%이상은 본인 직장에 복장 규정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30%에 달하는 직장인들이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한다거나 '허용되는 구두 굽 높이가 정해져 있다'는 등 성차별적 가이드라인의 구속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투운동 외에도 여성의 직장 복장규정을 바꾸자는 캠페인은 영국에서도 발생한 바 있다. 영국 BBC방송은 컨설팅 회사인 PwC에 파견직으로 고용됐던 한 여성이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복장 규정을 따르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해고당해 영국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했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아웃소싱 회사는 여성 사원들이 굽이 낮은 플랫 슈즈를 착용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기준이 까다롭던 항공사에서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 있어 눈길을 끈다. 제주항공은 2018년부터 안경 착용 허용에 이어 하이힐 의무 착용 규정도 없앴다. 객실승무원들에게 과도한 외모 규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고객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승무원들의 피로감만 높인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