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의 바다에는 1억 65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으며, 매년 전 세계에서는 3억 4000만 톤 가량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태평양의 한 가운데에는 '거대 플라스틱 섬'이 생기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거대 플라스틱 섬은 우리나라의 1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또한 세계 경제 포럼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2050년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물고기보다 많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듯 폐플라스틱 문제는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등과 함께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해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재생 플라스틱 섬유'가 등장했다. 재생 플라스틱 섬유란 바다에 떠다디는 플라스틱 병과 폐기물을 수거해 세천한 후 파쇄 및 정제 과정을 거쳐 실을 추출해 만드는 방식이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한 재생 플라스틱 섬유는 옷과 운동화, 가방 등을 만들 수 있어 글로벌 친환경 솔루션으로 손꼽히는 중이다.
특히 주목받는 곳이 신발 전체를 플라스틱 실로 만드는 샌프란시스코의 친환경 여성화 브랜드, '로티스(Rothy's)'다. 디자인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 이들이 친환경 신발을 판매하며 하나의 '유니콘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소비자에게 로티스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그 입지를 단단히 다진 브랜드다.
前 영국의 왕세자비 메건 마클(Meghan Markle)은 임신 중 16일 동안 남태평양 로열 투어를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 영향력 있는 행동과 연설 등을 진행했던 메건 마클의 애티튜드와 패션은 매일 주목받았지만, 특히 관심을 끌었던 것이 있다. 그녀가 신은 신발이 그 주인공이었다.
우아한 디자인의 신발은 친환경 플랫슈즈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메건 마클 외에도 이방카 트럼프(Ivanka Trump)와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 등 유명인사들이 해당 브랜드의 신발을 신은 사진이 퍼지며 입소문을 탔다.
특히 신발의 소재가 눈길을 끌었다. 로티스의 신발은 버려진 페트병을 조각내고 실로 뽑아 신발 전체를 플라스틱 실로 한 번에 뽑아낸다. 재생 플라스틱 섬유로 만든 신발로 유명세를 탄 만큼 재활용된 페트병의 수도 대단하다. 2016년 브랜드 론칭 이후 로티스가 재활용 한 페트병 수만 2020년 3월 현재까지 총 5000만 개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 데는 총 페트병 3개가 소모됐으며, 플랫슈즈에서 가장 중요한 밑창의 고무 역시 '탄소 중립' 제품을 사용했다. 탄소 중립이란 화석연료를 사용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나무를 심거나 재생 에너지 개발 등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실질적인 온실가스 배출 없이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들의 환경 생각은 신발에서 그치지 않았다. 신발을 담는 박스 역시 재활용 소재로 만든 것이며, 반품을 원할 경우에는 해당 박스에 그대로 담아 보내기만 하면 된다. 배송부터 반송까지 하나의 박스만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외에도 신발 포장재 역시 재사용 가능한 주머니를 사용하며, 오래 신어 낡은 신발을 로티스에게로 보내면 요가 매트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드러내야 하는 패션 아이템인 신발은 물론 아무리 착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예쁘지 않으면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패션업계 소비자들의 눈은 까다롭다. 하지만 로티스의 경우 패션업계에서 당당하게 자리한 기업인 만큼 디자인도 독특하고 우아하다.
이들은 누가, 어디에 신어도 우아하게 어울리는 신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신발 자체만 봐서는 재활용 소재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특히 편한 착용감 역시 인기몰이에 한 몫 했다는 평가다. 부드러운 니트 재질로 만들어지는 로티스의 신발은 편안한 착용감을 자랑한다. 이 덕분에 성인용 신발은 물론 어린아이들이 신어도 손색없을 신발이 완성된다. 영국의 왕세자비 신분이었던 메건 마클이 임산부였을 시기 신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마련이다.
또한 세탁과 관리 또한 간편하다. 세탁기에 돌려도 신발에 변형이 없을 정도로 견고한 로티스의 플랫슈즈는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신발이 됐다.
로티스가 이토록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팬슈머(fansumer)'의 역할이 컸다. 팬슈머란 팬(fan)과 컨슈머(consumer)의 합성어로, 단순 소비를 넘어 직접 투자와 제조 과정에 참여해 상품과 브랜드를 키워 내는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버려진 페트병을 한 데 모아 분쇄한 뒤, 압축해서 작은 조각으로 만들고 이 조각들에서 뽑아낸 실로 3D 프린터를 활용해 신발을 만든다. 이 덕분에 신발이 만들어지는 소요 시간은 6분, 신제품 출시에는 6주밖에 걸리지 않는다.
빠른 제작 시간을 강점으로 내세운 이들은 다양한 한정판 제품의 출시를 전략으로 세웠다. 이 덕분에 2019년에만 190여 종이 넘는 제품이 탄생하기도 했다. 또한 희귀한 신발은 '유니콘'이라 불리며 13배에 가까운 가격에 팔리기도 하며, 이러한 소비자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커뮤니티가 이들을 현재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주로 온라인을 위주로 판매되던 로티스의 신발은 사이즈 등에 대한 질문들이 모여 작은 커뮤니티가 만들어다. 실제로 소비자들이 남긴후기는 제품마다 평균 1000건을 넘어선다.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뭉치는 이들도 생겨나게 됐다. 사이즈를 기반으로 모이기도 하며, 희귀한 신발인 '유니콘'을 중심으로 이미 단종된 제품을 구하려는 이들 역시 늘어났다.
오로지 로티스를 좋아하는 이들만을 중심으로 특정 해시태그를 올리며 일상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로티스의 팬이라는 매개체만으로 서로 친구가 되며, 제품을 전파하고 싶어하는 충성도 높은 팬들을 갖게 됐다.
이에 로티스 측에서도 팬들과 소통하기에 나섰다. 로티스는 팬 중 일부를 '콜렉티브'로 임명하며 신제품을 미리 신어 보게 한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이들은 솔직한 감상을 남겨 다른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올린다. 소통과 고객을 동시에 잡은 마케팅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그 결과, 로티스는 최근 4400만 달러(한화 약 509억 원) 수준의 투자를 받으며 기업가치가 7억 달러(한화 약 8100억 원)에 달하는 기업이 됐다. 포브스가 선정한 '차세대 유니콘 기업'에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었던 이유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