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액티비티 플랫폼 클룩이 지난 2019년 글로벌 소비자 2만 1000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글로벌 혼행 트렌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93%가 홀로 떠나는 여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최근 국내에는 1인가구가 증가하며 '혼밥'이나 '혼술' 등의 트렌드는 물론 나 홀로 여행을 즐기는 '혼행러(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누군가와 같이 떠나는 것이 당연했던 여행은 어느새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먹고 싶은 맛집을 정해, 내가 편한 시간에 훌쩍 떠나는 혼행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는 추세다.
혼행의 매력이란 단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획했던 일이라 할지라도 컨디션에 맞춰 일정을 조율할 수 있으며, 음식과 관광 코스 역시 내 취향대로 모두 계획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안전의 위험은 물론 낯선 곳에 혼자 떨어졌다는 두려움과, 다수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나 홀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하다.
이때 "모두 프로 혼행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에세이 '혼자 여행은 처음입니다만'의 저자 이라암 작가는 스무 살 전까지 혼자서는 지하털도 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겁이 많았으나, 자신을 괴롭히던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날 훌쩍 나만의 여행을 떠났다.
혼행을 고민하는 이들의 심리적인 고통과 실제적인 어려움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펜을 들게 된 작가는 "삶에 어떤 변화가 조금이라도 생기기 원한다면 혼자 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며 자신있게 말하곤 한다. 작가가 말하는 혼행의 매력은 무엇일까. 데일리팝이 혼자 여행은 처음입니다만의 저자 이라암 작가와 만나봤다.
Q.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름만큼 독특한 삶을 사는 이라암입니다. 주업으로는 해외여행 가이드북을 집필하는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요, 부업으로 중증장애인의 고용훈련을 돕는 시간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면서 전공(사회복지계열)도 간간이 살리고 있습니다.
Q. 최근 발간하신 '혼자 여행은 처음입니다만'의 소개와 이 책을 쓰고자 하신 계기, 또 이 책을 어떤분들게 추천하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세요.
'혼자 여행은 처음입니다만'은 초보 혼행러를 위한 여행 마음 안내서이자 지침서입니다. 초보 혼행러가 여행의 전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과 실제 혼행에서 당면할 수 있는 사건·사고의 해결 방법이 적혀 있어요.
저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스물 전까지 혼자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겁이 많았어요. 해외로 첫 혼행을 떠나기 전날엔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베갯잇을 적실 정도였죠. 제 머릿속을 괴롭히는 고민과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여행 도서를 찾아봤어요. 하지만 혼행러의 실제적인 고민이나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없고, '나는 이렇게 여행 다녀왔다'는 이야기만 넘치더라고요.
결국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으로 혼행을 시작했어요. 혼행러가 겪는 심리적 고통과 실제적인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당면하면서 혼자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었죠. 제 혼행의 어려움이 사라지자 타인의 혼행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추천해 드리고 싶은 분들은 역시 초보 혼행러분들이에요. 그중에서도 가장 추천해 드리는 분들은 여러 가지 고민과 걱정으로 아무 시작도 못 해보고 있는 분들입니다. 책 첫머리에는 "꿈을 품고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라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이 실려 있어요. 이 책은 초보 혼행러분들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을 함께 찾아드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Q. 현재까지 약 55개 도시의 여행지를 방문하셨는데, 그 중 초보 혼행러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으신가요?
초보 혼행러에게 가장 중요한 여행지의 요소는 바로 접근성이라고 생각해요. 혼행은 혼자 먹고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잖아요? 초보 혼행러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행지의 식문화와 대중교통 문화가 우리나라와 비슷해야 쉽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어요.
유럽권에서는 영국의 런던, 아시아권에서는 타이완(대만)의 타이베이를 추천해 드려요. 이 두 곳은 '그냥 서울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중교통이 편하다고 느낀 곳이에요. 여행 또는 취재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죠.
런던과 타이베이는 식문화도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특색 있고 이색적인 음식은 실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국인 입맛에 익숙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이나 한식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먹는 데에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Q. 많은 여행지를 방문하신 만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양할 것 같은데요. 혹시 기억에 남는 인연이 있을까요?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정말 다양한 인연이 기억나서 꼽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인연이 한 명 있어서 그 이야기를 나누어 드릴게요.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던 때였어요. 남성 검표원분이 제 표를 확인한 후에 머뭇거리다 중국인이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자 놀라면서, 또 반가워하면서 어디에 사는지 물었어요. 서울에 산다고 말하니 그분은 정말 기쁜 표정으로 서울에 간 적이 있다고 했어요. 핸드폰을 꺼내서 서울 여행 사진을 보여 주고, 또 음식 사진 여러 장을 보여 주면서 불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여행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던 와중 기차가 어떤 역에 멈췄어요. 그분은 창밖을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다른 기차의 검표를 하러 가야 한다고, 또 보자고 말하며 서둘러 내렸어요.
또 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로 한 시간 후에 또 만났어요. 알고 보니 하루의 절반은 스위스 기차를 검표하고 남은 절반은 이탈리아 기차를 검표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엔 아예 자리를 잡고 여행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정동진‧속초‧보성 등을 보여 줬어요. 보통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이 가는 곳은 아니라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한국분이셨어요. 다음엔 어디로 가냐고 해서 이탈리아로 간다고 했더니, "이탈리아 기차 검표도 하니 그때 또 보자"고 하더라고요.
결론적으로 또 만나지는 못했어요. 특별한 인연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그분이 기억나요. 그전까지 제게 말을 건 외국인들은 저에 대해 궁금해했는데, 본인의 한국 여행을 자랑했던 외국인은 처음이라 그런 것 같아요. 교감이 오갔다기보다는 그분의 일방적인 여행 사진 자랑과 제 리액션만 오갔지만 참 재미있던 인연이었어요.
Q. 여행지에서 가장 힘들었던,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에 대한 일화를 말씀해 주세요.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이탈리아 밀라노역에서 핸드폰이 고장 났을 때예요. '번역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죠. 심지어 여권은 잃어버린 건지, 숙소에서 가져오지 않은 건지 가방에도 없었어요. 일단 숙소에 돌아가야겠다 싶어 몇 분 후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끊었는데,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플랫폼을 전혀 못 찾겠더라고요. 급한 대로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도와주고 싶어 하는 여성분도 있었지만, 하필 영어를 못 하시는 분이었죠.
결국 기차는 놓쳤어요. 다음 기차는 모두 두 번씩 환승해야 했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환승을 시도하다 숙소에도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그래서 두 시간 후에 있는 직행을 무작정 기다렸죠. 밀라노역은 유럽의 다양한 지역으로 통하는 열차가 오가는 곳이라 크기도 매우 크고, 복잡하기도 복잡하고, 사람도 정말 많아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도 누구 하나 관심 없이 자기 갈 길에 바빴고,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보이지 않으니 더 무섭고 힘들었어요. 세상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정말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때만 생각하면 절망스럽고 무서웠던 감정이 금방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가장 행복했던 경험은 역시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봤던 때에요. 어두운 밤하늘에 에메랄드색 오로라가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졌던 광경은 아직도 가슴이 벅차올라요.
Q. 혼행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또, 다수보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더 좋은 점이 있을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혼행에서는 여행을 다 멈추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 일을 나 혼자만이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도 힘들죠.
하지만 어렵고 힘든 기억을 다 덮을 만큼의 행복한 일 또한 일어난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요. 그날, 그 시간에,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느끼고 가질 수 있는 행복한 경험 말이에요. 아주 구미가 당기는 매력이죠.
혼자 여행을 떠날 때의 가장 좋은 점은 나만 생각하면 된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면 그 사람의 취향과 기분, 컨디션 등을 다 고려해야 하잖아요. 내가 더 즐기고 싶은 어떤 것들을 의지와 상관없이 포기해야만 하죠. 하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면 나만 생각하면 돼요. 내 취향과 기분, 컨디션을 고려해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고, 내가 즐기고 싶은 것을 마음에 찰 때까지 충분히 즐기고, 쉬고 싶을 때는 쉬면 되죠. 오로지 내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온전한 내 세상이 되는 거예요. 저는 그 기분이 참 좋아요.
Q. 혼행을 위한 팁과, 혼행을 고민 중인 분들께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여행도 처음부터 많은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중요해요. 여행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당황하지 않고 처리하는 정신력이나 대처 능력 등은 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지거든요. 국내 단기 혼행 경험도 없는 사람이 처음부터 해외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되면 해외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지치게 돼요. 심한 경우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오게 될 수도 있죠.
혼자 떠나는 여행은 국내 여행에서 해외여행, 단기여행에서 중장기여행의 순서로 천천히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혼자 여행이 어떤 것인지 알고, 혼자 여행할 때의 나를 잘 알아야 그다음 여행을 나에게 더 알맞게,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어요.
혼행을 고민하는 사람은 재충전이든, 혼자 여행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하든, 여행으로 지금의 삶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혼자 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져요. 취향, 가치관, 자존감 등 내면과 관련된 변화가 필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이 판이하게 전복되기도 할 거예요. 삶에 어떤 변화가 조금이라도 생기기 원한다면 혼자 여행을 떠나보길 권합니다.
Q. 작가님께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여행을 하면서 유연하게 생각하는 방법,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방법 등을 배웠어요. 이제는 제 삶의 습관으로 굳혀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죠. 여행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깨우쳐주는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작가님의 향후 계획, 혹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사람들이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혼자 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관심이 있어요. 대상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제가 관심이 생기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볼 생각입니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