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 제정 1주년이 됐다. 스토킹처벌법은 제정 당시부터 스토킹을 협소하게 정의하고 반의사불벌조항을 포함하는 등 한계가 끊임없이 지적됐고,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 및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을 ‘보호법 마련’으로 미뤘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 심의·의결됐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의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통계를 살펴보면, 스토킹 상담이 차지하는 비율이 11.0% 에서 15.5%로 소폭 상승했다.
다만 스토킹처벌법 제정 및 시행 전후로 본회에서 스토킹을 주호소로 하는 상담 건수의 변화가 눈에 띄게 차이나지 않는데, 이는 폭력 유형별 상담건수가 내담자의 ‘주호소’를 위주로 집계되었기에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타 유형의 폭력과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스토킹 피해를 모두 포함하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에서는 대부분 스토킹이 동반되며, 특히 가정폭력의 경우 ‘스토킹’으로 인지조차 되지 못할뿐, 이면에는 ‘사랑’, ‘단속’, ‘훈육’ 등의 이름으로 상대를 통제하는 행위로서 스토킹이 거의 대부분 존재한다.
또한, 스토킹처벌법 제정 이전부터 본회가 스토킹 피해 역시 상담·지원해왔다는 사실의 영향도 다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상담의 경향을 살펴보았을 때,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된 2021년 4월을 전후로 스토킹을 처벌하기 위해 신고 시점을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로 고민하는 사례가 반복해서 발견된다.
스토킹처벌법을 기다려 온 피해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만한 대목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스토킹 신고 건수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후로 큰 변화가 있었다. 스토킹처벌법 제정 전, 2020년 기준 하루 평균 약 12.3명이던 스토킹 신고 건수가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10월 이후에는 전국에서 하루 평균 약 100여건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여성폭력 피해자가 경험하는 폭력은 하나의 유형에 국한되지 않고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스토킹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1년 폭력피해가 있는 초기상담 1,092건 중 친밀한 관계 내 파트너에 의해 발생한 피해는 465건이었으며, 다양한 유형이 있었다.
그 중 정서적 폭력이 68.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정서적 폭력의 세부 내용에서 ‘감시·미행’, ‘반복적연락·찾아오기’와 같이 스토킹에 해당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3월 홈페이지 및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채널을 통해 스토킹 피해자 포커스그룹인터뷰(F.G.I, 이하 그룹인터뷰) 참여자를 모집하고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공개했다.
다음은 그룹인터뷰를 통해 피해자들이 지적한 문제에 대한 내용이다.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다수의 피해자는 여전히 자신이 겪은 것을 ‘스토킹’으로 명명할 수 있는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심지어 신고가 가능한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스토킹처벌법이 정의하는 스토킹 행위는 피해자를 ‘따라다니고, 접근하고, 연락하는’ 것으로 요약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가 겪는 스토킹은 법의 간단명료한 설명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일단 가장 컸던 게 이제 집이 불편해지는 거죠. 제 집이 불편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갈 데가 없어져요. 그래서 사실 저 지금 거의 1년째? 1년 반째? 친구 집 와서 지내고 있거든요. 왜냐면은 그 집이 전세계약이 돼 있어요. 근데 요즘 아시다시피 전세계약 구하기도 힘들고 되게 잘 구한 집이었거든요. (중략) 너무 마음에 들었던 집인데 더 이상 집에 갈 수 없고 집에 있으면 너무 불편하고 언제 올지 모르겠고. ” - 피해자A
가해자는 피해자의 집 주소를 알고, 집을 찾아가 우편물, 택배 물품 등을 확인한 후 어떤 우편이 왔는지 피해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피해자A는 가해자와 마주칠 가능성이 있었기에 집은 물론 집 주변 동네도 편한 마음으로 다닐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 이제 자꾸 다른 데에 와서 피신처럼 있죠. 집이 불편해진다는 게 제일 비극적인 것 같아요. 그게 집이 불편해지고 (중략) 동네에서 다니면서 계속 긴장하면서 다니죠” - 피해자A
피해자를 괴롭힌 것은 거주지에서 안전하게 지내지 못하는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전세 및 월세 계약으로 집을 구한 경우, 피해자들은 자신이 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시선을 감당해야 했고, 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낙인은 실제 주거불안 및 경제적 피해로 이어졌다.
“한 두 달 정도는 거기서 버텨야 됐었는데 좀 트라우마가 엄청 심했고 집주인이 저를 되게 안 좋게 봐가지고. 왜냐하면은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값 떨어진다.’ 그런 생각이 있으니까 저를 되게 많이 괴롭혔고, 그리고 나중에 보증금도 엄청나게 까였어요.” - 피해자B
“집주인 집값 떨어진다고 그런 거랑 되게 비슷한 일맥인데 경찰들 와 있는 거 보고 동네 사람들이 안 좋아하더라고요.” - 피해자C
이러한 경험은 스토킹 피해를 밝히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하다는 메시지로 작동한다. 피해자B는 직장에서도 이어지는 스토킹을 피하려고 자주 이직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직 사유가 가해자의 스토킹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밝힐 수 없었다. 결국, 잦은 이직으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되었다.
“저는 일단은 회사를 잘렸고 그 회사를 옮겨도 회사에 있을 때도 전화가 걔한테도 오고 걔네 엄마 한테도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런 날이면 약간 일을 못 하겠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좀 20대 때는 회사를 제대로 못 다닌 것 같아요. 거의 맨날 이직하고 또 이직하고 근데 뭔가 이직 사유는 말을 하기가 좀 어렵고 그래서 되게 경력 문제가 많이 생겼고” - 피해자B
스토킹은 피해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피해자의 삶을 옥죄는 족쇄로 작동하였다. 피해자B는 이러한 상황을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뭔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제가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잘못한 것처럼 되는 그런 상황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 피해자B
피해자는 스토킹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존에 알고 지내던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단절해야만 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관계한 기간이 길수록, 서로 알고 있는 지인이 많을수록 피해는 커졌다. 가해자와 2년 정도 사귀었던 피해자B는 20대에 알고 지낸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잃었다.
반면, 스토킹이 자신의 인간관계에 영향이 크지 않았다고 답한 피해자C와 피해자A는 그 이유를 ‘다행히 (알고 지낸) 시간이 짧아서’, '다행히 겹치는 지인이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가해자가) 지인들한테 헤어지고 나서 연락을 딱 돌렸더라고요. (중략) 주변 지인들이 저에 대한 정보를 걔한테 얘기를 해준다거나. 뭔가 저랑 연결이 돼가지고, 그런 일이 있어가지고 걔랑 겹치는 지인들은 다 차단을 하고 없앴어요. (중략) 학교 사람들이랑도 다 연락 끊겼고 그냥 20대 때 만났던 사람들이랑은 아예 연락을 못하게 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 거취가 알려지니까.” - 피해자B
“저 같은 경우에는 다행히 시간이 짧아서 (가족, 지인 등) 연락처를 공유를 안 해서 그럴 수는 없었어요.” - 피해자A
“근데 저는 다행히 겹치는 지인이 없어가지고 정확히 피해는 없었어요.” - 피해자C
스토킹은 대부분 아는 사이에서 발생한다. 특히 연인·데이트관계, 부부 등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점을 이용하여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인적 신뢰관계에 있던 사람에 의한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
“이 사람을 겪고 전후가 완전 그냥 이렇게 팔 하나 잘린 것처럼. 이 상처가 언젠가는 아물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팔이 없는 거는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가 없어져요. (중략) 전후의 삶이 절대로 같지 않고, 이렇게 나이스 했던 사람이 이렇게 악마로 돌변할 수 있어? 그러면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볼 수 있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어떻게 구분할 수 있지?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아예 없어졌고 사람을 신뢰하는 능력, 아예 못하겠고 그러다 보니까 말도 하기, 처음에 말 걸고 싶지도 않아졌고 관계가 누구와도 맺고 싶지도 않아졌고 그렇게 바뀌었어요.” - 피해자C
“제 휴대폰 번호를 누구한테 잘 안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익명성을 더 선호하게 됐고요. 온라인에 그러니까 충분히 요즘 온라인 스토킹도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중략) 또 아이디를 최대한 예전과 다른 추적되지 않을 만한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사이트마다 자꾸 다른 아이디를 쓰게 되고” - 피해자A
“밤에 못 다녀요. 그냥 어두울 때 아예 못 다니고, (중략) 사진, 카톡 사진 다 뺐고. 이렇게 얼굴만 잘라가지고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끼워가지고, 여자 알몸에 씌우거나 그런 식으로 보복 무섭고요." - 피해자C
“저는 한 5년 동안 SNS를 안 하고 어디다가 사진을 올리는 것도 없고 중고나라도 안 했어요. 진짜 왜냐하면 번호가 남으니까. (중략) 팔로우도 제가 아는 사람 아니면 아예 안 받고 그렇게 좀 폐쇄적으로 운영을 해요. 그리고 검색에 안 걸리게 하는 거 끔찍하고 되게 좀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어요." - 피해자B
문제① 협소한 스토킹 정의
피해자는 스토킹처벌법의 스토킹범죄 정의가 자신의 스토킹 피해 경험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고 느꼈으며, 특히 구성요건의 협소함을 짚었다. 수년간 스토킹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에서스토킹의 ‘지속성과 반복성’을 인정받기 위해 분투해야 했던 피해자B는 ‘지속성’의 개념을 ‘미래에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협’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스토킹 행위가 반복돼야지 스토킹 범죄라는 거는 바뀌어야 돼요. 무조건 스토킹 행위가 아예 처음부터 범죄로 돼야 돼요. 스토킹은 반복적이면은 운이 좋아서 살아 있다뿐이지 다음에 반복할 때는 와서 그냥 칼로 찌를 거예요. 반복되면 안 되는 일이 스토킹이에요.” - 피해자C
“근데 계속 저한테 지속적이긴 했는데 뭔가 법에서 받아들여지기에는 지속적이라는 게 적어도 일주일에 몇 번 하루에 몇 번씩 이렇게 와야지만 사람이 고통을 심하게 느낀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중략) 근데 자꾸 걔가 연락이 올 때마다 옛날에 끔찍했던 기억이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실제로 PTSD 진단을 받아가지고 거의 한 4년째 상담받고 있거든요.” - 피해자B
“그러니까 그냥 언제든지 또 마주칠 수 있다는 거, 그런 것 같아요. (중략) 내가 이 이름, 이 얼굴로 살아가면은 얘를 무조건 마주칠 수밖에 없겠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하니까 그것도 계속 지속적으로 절 괴롭히는 거 아닌가요?” - 피해자B
“‘정당한 이유 없이’가 무슨 의미일까요? 어떤 게 (스토킹의) 정당한 이유일까요?” - 피해자A
문제② '직접적인 피해'와 증거수집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 유형이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스토킹으로 인한 피해또한, 통제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유형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폭력을 ‘신체에 대한 침해’로 협소하게 상상하는 사회에서 따라다니기, 접근하기로 설명되는 스토킹을 증명하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약간 제 증거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가는 날까지도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게 잘 받아 들여질 수 있을까를 고민을 해서 갔었기 때문에” - 피해자A
문제③ 턱없이 부족한 접근금지 기간
접근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긴급임시조치, 잠정조치는 가해자의 스토킹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토킹처벌법에 포함된 제도이다. 피해자C는 가해자를 신고하고 잠정조치를 통해 가해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게 됐지만, 기간 종료를 기다려 다시 연락해온 가해자를 보고 제도의 한계를 체감했다.
접근금지 명령을 통해 가해자를 제재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지만, 접근금지 기간을 가해자에게 알림으로 써 오히려 ‘그 기간 이후에는 괜찮다’는 의미로 전달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가해자에게) 이제 잠정조치 끝나니까 연락이 온 건가 봐요. 그다음에 경찰이 그러던데, ‘이놈 끝 난 거 알고 연락했네.’” - 피해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