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트니코바의 '금메달', 2014 소치의 '수치'로 기억될 듯…
'피겨여왕' 김연아(24)의 올림픽 2연패가 석연찮은 판정으로 좌절되면서 러시아의 홈 텃세와 자국 선수 밀어주기로 러시아가 금메달을 빼앗아갔다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219.11점)가 러시아의 신예 아델리나 소트니코바(224.59점)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에 머물렀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는 외국 기자들은 김연아를 상대로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잇달아 던졌고, 김연아는 "판정은 심판의 권한이고 내가 이야기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소트니코바는 자신을 향한 의혹에 대해 "점수는 심판들이 매긴 것이다. 나는 그들이 정한 점수를 받았을 뿐"이라며 "판정에 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 나는 심판이 아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심판에게 직접 물어봐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미국 기자는 "러시아가 금메달을 훔쳐갔다"며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의 17세 소녀 소트니코바가 금메달, 김연아가 은메달을 차지했다"며 "여러분은 이 결과에 동의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 역시 '홈 아이스 어드밴티지'라는 기사를 올려 소트니코바가 채점에서 이득을 봤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스포츠 전문지 레퀴프는 이날 피겨스케이팅 결과를 전하는 기사 제목에 '스캔들'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채점이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이를 증명하듯 미국 뉴저지 타임스를 인용한 페이스북 댓글에는 심판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 졌다.
해당 언론과 댓글에는 "전체 점수의 60%를 구성하는 가산점수 부분과 예술점수 부분은 재량점수"라며 "최종 기술판정 심판이 러시아인이고, 그밖에 1998년 나가노올림픽 당시 판정 담합과 연루돼 1년 자격정지를 받은 우크라이나 심판(유리 발코프)과 러시아빙상연맹 회장(알렉산드르 고르쉬코프)의 부인(알라 셰코브초바)이 심판석에 있었다. 이것이 단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수긍 힘든 기술점수…아쉬웠던 김연아 마지막 은퇴 무대
이어 다른 외신은 "심판 판정 논쟁은 스포츠계의 새로운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주최국 러시아는 주최국으로서 안고 있던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 획득이라는 마지막 장벽을 무너뜨린 것을 자축했다"고 비꼬았다.
지난 1984년, 1988년 여자 피겨 금메달리스트인 '원조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독일)는 경기장 내 독일 방송 부스에서 "경기를 지켜본 중립적인 사람들은 점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피겨 국가대표 애슐리 와그너도 "경기 중 실수한 선수가 완벽한 경기를 한 선수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스포츠를 사람들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팬들을 원한다면 이 스포츠에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소치에서 직접 취재를 하고 있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올리 윌리엄스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김연아가 은메달이라니 정말 믿을 수 없다"며 "소트니코바의 금메달 획득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판정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전했다.
소치의 아이스베르크 기자석의 한 이탈리아 기자 역시 "소트니코바는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챔피언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또 다른 SNS에서는 "김연아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다소 평이한 기술을 고른 반면 러시아 선수는 고난이도로 모험을 걸었다"고 말한 내용도 있었다.
그는 이어 "어차피 편파적인 판정이 있을 것을 알았고 특별한 점수가 필요했으니 좀 더 모험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댓글에는 "이번에는 쇼트도 아닌 프리에서 탱고를 택하는 '도전' 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숨쉴 틈 없이 타이트한 프로그램이었다. 김연아가 안정적이거나 평이한 길을 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반론도 이어졌다.
한편, 푸틴 대통령의 페이스북에는 이날 오전 SBS 배성재 아나운서가 "푸틴 동네 운동회 할거면 우린 왜 초대한 거냐", "소치는 올림픽의 수치"라는 글을 잇달아 올리며 성토했지만 파장을 의식한 듯 삭제했다.
그러나 현재 푸틴 대통령 관련 글은 이미 캡처돼 인터넷과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사실로 한국 네티즌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이번 여자 피겨스케이팅 판정 논란으로 비난의 대상으로 돌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부 네티즌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혐한 네티즌과 북한의 사이버 부대가 한국인을 가장해 ISU(국제빙상연맹), 푸틴 대통령,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등에 한글로 욕설을 작성, 한국의 이미지를 나쁘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