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이미 전기차 지하 주차 금지하는 국가도
소화설비 개선 목소리도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난 전기차 화재사고를 계기로 전기차 주차를 허용하지 않는 지하·타워 주차장이 늘고 있다. 화재 공포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정부는 전기차 화재 예방책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사고 건수는 2020년 11건에서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3건 등 매년 전년대비 2배가량 늘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화재사고도 급증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지하·타워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할 시 진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 청라 화재사고 이후 아무 전조증상 없이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번지며 전국 곳곳에서 지하·타워주차장 주차를 허용하지 않는 곳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대응에 나섰다. 경남도는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을 지상 또는 출입구 근처에 설치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경북도는 ‘환경친화적 자동차 전용주차 구역의 화재예방 및 안전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다만 일부 전기차 차주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화재 비율은 내연차가 더 높은데 잠재적 방화범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22년 국내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1399건 중 자동차 화재는 611건(43.7%)이다. 이 보고서는 전기차와 내연차를 구분하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전기차는 ‘전기적 요인’에 의해, 내연차는 ‘기계적 요인’에 의한 화재가 다수다.
611건의 자동차 화재사고의 원인을 살펴보면 전기적 요인이 53.0%, 기계적 요인은 18.0%였다. 이외에 부주의 7.4%, 원인미상은 15.5%를 차지한다.
해외에선 이미 전기차 지하 주차 금지
스프링클러는 문제 없나?
유럽 일부 국가는 이미 전기차를 지하에 주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 쿨름바흐시와 레온베르크시는 시내의 한 주차장에서 차량에 불이 나 5개월간 주차장이 폐쇄된 사건 이후 2021년부터 지하주차장에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주차를 전면 금지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지난 2022년 2월 전기차 화재 발생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화염에 심하게 손상된 사고가 발생했는데 당시 이를 진압했던 소방관들은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주차 금지를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를 막을 것이 아닌, 소화설비의 개선을 통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단법인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공동주택 내 전기차 충전시설에 대한 화재안전기준 마련과 예방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부분의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은 동파방지 목적으로 준비 작동식 또는 건식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돼 있어 화재진압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준비 작동식과 건식 시스템은 배관 부식이 습식보다 더 빨리 진행돼 배관 누수 및 누기 발생으로 유지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해외에서는 질소발생기를 설치해 공기를 질소로 치환하게끔 강제하는 반면, 국내는 밸브를 잠궈놓거나 연동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등 화재 시 작동 불능 상태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 많다고 대구안실련은 설명했다.
또 습식은 스프링클러 헤드가 열에 의해 바로 작동돼 물이 즉시 방수되지만, 준비작동식과 건식은 화재감지기가 교차 감지한 상태해서 스프링클러를 막고 있는 퓨즈 등이 열에 의해 녹아야 물이 방수되는 만큼 화재 시 시간이 지체돼 초기 화재 진압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소방당국도 스프링클러 개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충전구역이 있는 지하주차장의 경우 스프링클러 헤드 간 거리를 기존 2.3m에서 2.0~2.1m로 좁혀 화재 시 보다 많은 양의 물이 분사돼 조기 진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스프링클러 헤드의 민감도를 높이는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정부는 전기차 관련 대책을 마련해 다음달 초 공식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 과충전 방치 체계 수립 등 안전성 확보 방안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지하 대신 지상 충전기 확대 방안,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 설치 확대 방안 등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