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대기업들이 잇따라 임원인사를 발표한 가운데 '오너 3·4세'로 불리는 대기업 자제들의 초고속 임원 승진이 이뤄지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단어가 생길만큼 부의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자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속도를 더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평균 입사 연령이 20대 후반~30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재벌가 자제들이 입사하자마자 '부장'도 모자라 30대에 전무 타이틀을 다는 것을 바라만 보는 입장에선 '사기 저하'와 '의욕 상실'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기업 자제들의 반감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연말 임원인사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재계의 임원인사에 오너 3·4세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러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황태자'에 부(富)는 되물림
지나친 '가족 경영' 눈살
지난해 12월 2일 코오롱그룹은 이웅렬 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 부장을 상무보로 승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올해 32세인 이 상무보는 입사 3년여 만에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면세점 사업 진출에 성공한 두산그룹도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오리콤 총괄 부사장(CCO, Chief Creative Officer)을 면세점 전략담당 전무로 임명했다. 박 부사장은 지난 2014년 자신의 광고회사 빅앤트가 두산그룹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곧장 CCO 자리에 올랐다.
이밖에도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장남 박태영 경영전략본부장은 지난 2012년 4월 입사부터 상무로 시작해 4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기획총괄부문장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는 등 일명 '금수저'들의 고속 승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들의 임원인사에 오너가(家) 자제들이 '초고속 승진'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자 일반 사원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동시에 일각에서는 성과에 상관없는 '지나친 기업 되물림'이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미 주요 직책을 '오너 3세'들이 물려받아 경영 중인 GS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오너 4세'를 경영에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가족 경영'이라는 비판은 더욱 가세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아들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이 상무에서 전무로,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 허서홍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 사업부문장이 부장에서 상무로,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 허준홍 GS칼텍스 법인사업부문장이 상무에서 전무로 각각 승진했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허준홍 GS칼텍스 전무로 고작 40세에 불과하다.
대리 승진보다 빠른 임원 승진
바라보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에 입사한 3·4세 자녀는 모두 44명이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제외하고 현재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32명으로 알려졌다.
3·4세 중 입사하자마자 바로 임원이 돼 경영에 참여한 경우는 9명으로, 조원국 한진중공업 전무, 대림코퍼레이션의 이해창 부사장·이우현 OCI 사장 등이 임원으로 바로 입사했다.
평범한 일반인이 입사 3, 4년에 대리로 승진하는 것에 반해 같은 기간 '별'을 다는 오너가 자제들은 이미 출발선부터 다른 시작인 것이다.
보통 사원들은 빨라야 20대 중·후반에 입사해 30대에 대리 직급으로 올라가는게 일반적이며, 아무리 일을 잘해도 30대에 대기업의 임원으로 승진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에서 조사한 '인사담당자가 밝히는 신입사원 연령기준'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28~30세까지가 전체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 입사 3년차를 맞이한 A씨는 "이 곳에서는 내 미래를 맡길 수 없을 것 같다"며 "아무리 일해도 올라갈 곳의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업무의 의욕이 저하되는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같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기업 측은 '오너 일가'이기 때문이 아닌 '성과를 반영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입사 4년차에 보여준 것이 얼마나 있겠냐'는 반박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과 최근 몽고식품의 운전기사 폭행 등 대기업의 '갑질'이 심심찮게 발생하면서, 일부에서는 '재벌 3세'의 만행을 다룬 영화 '베테랑'이 더 이상 스크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역량을 먼저 증명한 다음 승진이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데일리팝=이성진, 이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