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10cm의 거구에 초점이 나간 것 같은 퀭한 눈동자, 걸걸한 목소리에서는 세월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곤 한다.
초등학생을 타겟으로 제작된 이 캐릭터가 오히려 2030세대를 저격하고 있다. EBS가 4월부터 EBS1채널과 유튜브 '자이언트 펭TV'에서 선보인 키 210cm의 펭귄 캐릭터 '펭수'를 소개한다.
본래 펭수는 초등학생들이 즐겨 보던 프로그램 '톡!톡! 보니하니'의 10분 남짓한 코너인 '자이언트 펭TV'로 시작됐다. 크리에이터의 꿈을 가진 펭수가 초등학생의 눈높이에서 최근 트렌드와 고민 등을 공유하자는 것을 의도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20대~30대를 저격하며 '학식픽', '회식픽' 혹은 '성인용 뽀로로' 등의 애칭을 듣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어른들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구독자 2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렇듯 어린이들의 전유물이었던 EBS의 캐릭터가 '어른이(어린이+아이의 줄임말)'들의 마음을 뺏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펭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그의 솔직한 입담에 있다. 학교나 직장 생활에 지친 사회초년생들이 펭수의 솔직한 발언에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펭수는 교육방송의 원조 EBS의 캐릭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필터링 없는'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스스로 EBS의 연습생 신분임을 자처하지만, EBS의 김명중 사장 이름을 시도 때도 없이 언급한다. 펭수는 "못해먹겠네"라거나 "EBS에서 잘리면 KBS에 가겠다"는 말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구독자 1만 명 달성 회의 중에는 "공약으로 1만 명에게 선물을 주자"고 제안한 뒤, 누구의 돈으로 선물을 준비할 것이라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김명중"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렇듯 펭수의 상사를 향한 거침없는 발언은 '꼰대' 문화에 반기를 드는 2030세대에게 통쾌하게 먹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B급 감성 또한 2030세대의 마음을 저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파격적인 드립과 약간의 허술함, 그리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엉뚱하고 솔직한 매력이 이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이다.
최근 2030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채널 '워크맨'과 '소련여자',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등은 '저 세상 애드리브'와 유쾌함 사이의 어디쯤을 넘나드는 재미는 확실한 화제성을 부르고 있다.
대다수의 콘텐츠 이용자들은 모바일 플랫폼의 특성상 짧은 영상에 익숙하고 더욱 집중할 수 있으며, 이에 조금은 더 자극적이고 허를 찌르는 유쾌한 감각과 간결한 편집을 선호한다. 더불어 이를 SNS를 통해 공유하고 확산하며, 이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바이럴 과정을 통해 펭수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펭수를 향한 2030세대의 사랑은 EBS의 편성표까지 움직였다. 실제로 EBS는 최근 가을 개편을 통해 자이언트 펭 TV와 톡!톡! 보니하니를 분리했으며, 자이언트 펭 TV를 금요일 오후 8시 30분부터 20분간 방영하고 있다.
하지만 펭수에게 '선을 넘는 드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 방송 프로그램의 캐릭터답게 복지관에 찾아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드린다거나 초등학교를 탐방하기도 하며, 사적인 내용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등 진중한 내용도 담고 있다.
어릴 적 EBS를 즐겨보던 아이들 또한 이제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의 쓴맛을 보고 있다. 이때의 향수를 느끼는 2030세대와 펭수의 속 시원한 입담이 만나 어른이들의 뽀로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 예상된다.
특히 바쁜 라이프 스타일로 인해 TV를 챙겨보지 못하는 어른이들을 위해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됐다. 펭수의 매력과 어릴 적 향수가 고스란히 묻어난 '이육대' 콘텐츠를 시작으로, 구독자 2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처럼 B급 감성 등의 요즘 트렌드와 新 매체의 적절한 활용은 펭수를 회식픽 캐릭터로 만들어 준 것이다.
한편 아기일 때까지만 재미있는 채널을 편견을 부순 펭수, 어린이들을 아기 취급하지 않는 어린이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는 유튜브 채널과 매주 금요일 8시 30분, EBS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