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10월 말 우리 것은 아니지만, 즐기는 문화가 있다. 바로 영미권의 전통 행사 '할로윈(Halloween)'이다. 우리에겐 특별한 코스튬을 준비해 사람을 만나는 행사로 여겨지지만, 할로윈은 새해가 되기 마지막 날에 악령들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끔 안녕을 바라는 축제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할로윈의 유래, 삼하인 축제
기원전 500년경 아일랜드에 살던 켈트족은 1년을 10개월로 보았고, 그들에게 10월 31일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켈트족은 이날 지하 세계의 문이 열려 죽은 자와 악귀들이 인간세계로 올라온다고 믿고, 새해에 기거할 살아있는 몸을 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밖에 음식을 두어 그들이 먹고 떠나도록 하고, 스스로 악령처럼 꾸며 악귀가 깃드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이런 풍습인 '삼하인(Samhain) 축제'가 지금의 할로윈 문화의 원형이 됐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할로윈은 미국 내 켈트족의 풍습을 간직하고 있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치르는 소규모 축제였으나,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100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본격 이주하면서 할로윈이 퍼져나갔고, 미국을 대표하는 축제가 됐다.
외국 vs 한국 공통점
죽은 자가 산 자의 땅으로 온다
할로윈은 기본적으로 죽은 사람이 내세에 존재한다고 신적인 존재를 믿는 샤머니즘의 관습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명절 풍습인 제사와도 결을 같이 한다. 행정안전부의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제사는 고대 사람들이 신의 가호로 재앙을 피하고자 천지신명께 정성을 올린 것이 시작이다. 동서양 모두 귀신, 천지신명 등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생각해 혹시 닥쳐올 어려움을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일을 막는 방법을 보는 차이가 있다.
할로윈은 죽은 자들은 악귀로 보며, 이들을 피하기 위해 외양적인 모습을 바꿨다. 우리나라는 죽은 조상들이 산 자들을 잘 돌봐주기를 바라며 음식과 정성을 바쳤다.
잭오랜턴 vs 굿과 저승사자
할로윈의 상징인 호박 속을 파낸 얼굴 모양의 '잭오랜턴(Jack-O'-Lantern)' 등불은 인간 세상을 떠도는 죽은 자를 위한 길잡이 불이다. 이 호박 등은 아일랜드에 살던 구두쇠 '잭'이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질러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을 오 가지도 못한 채 망령을 위해 길을 밝히는 된 벌을 받은 것에서 유래됐다.
호박 잭오랜턴은 죽은 사람을 인간 세계에서 기리고 인도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사령제(굿)와 저승사자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는 우리의 민간신앙 풍속을 '사령제'라고 한다. 일명 천도굿으로 아시아 민족들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그냥 떠나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해 쉽게 저승으로 가게끔 모시고 숭배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맞는 길을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에서 저승사자 또한 맥락을 같이한다. 잭오랜턴은 일종의 굿할 때 쓰는 방울이나 저승자자의 물체화와 같은 것이다.
달다구리 Treat vs 달달한 한약 '전약'
현재 할로윈의 대표 놀이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닌 무서운 존재로 분장한 채 이웃집을 돌아다니면서 간식거리를 주지 않으면 장난치겠다고 말하는 '트릭 오어 트릿 (trick or treat)'이다. 이는 중세에 특별한 날이 되면 집마다 돌아다니는 아이와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악령이 집에 들어오지 않도록 음식으로 달래는 것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도 악귀를 물리치는 식품이 있다. 바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달달한 고체 한약 '전약'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라이브러리를 보면 추운 겨울을 노인이나 약자들이 잘 견디기를 바라며 한약을 집마다 달였다. 하지만 한약을 달이지 못하거나 쉽게 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약을 진하게 고아 만든 것에 꿀, 대추고, 생강 등을 넣고 차게 굳혀 먹는 겨울 보양식 전약을 만들어 먹었다. 몸을 보존하는 의미와 함께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아 임금에게 진상했다.
할로윈과 우리나라의 민속 풍습은 죽은 자를 달래고, 현재 산 자의 삶을 위한다는 것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은 귀신이 모두 악령이며, 무서운 모습을 스스로 만드는 등 안녕을 위한 공격 같은 방어의 모습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다른 세상의 존재에게 기도하고 달래는 등 대적하지 않는 방어의 면모를 갖고 있다.
코로나19속 할로윈은 북적이지 못할 것이다.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벤트에 아쉬움이 있다면, 할로윈과 목적을 같이하지만 또 다른 전통 풍습을 돌아보는 걸로 색다른 날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