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의도적으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빼돌리는 전세사기가 계속해서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공범으로 가담한 공인중개사의 검거 소식도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전문자격증을 보유한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되려 범죄 행위에 적극 가담한 것에 대한 지탄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에 공인중개사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 가해자로 의심받는 1034명 중 427명(41.3%)는 공인중개사 및 중개보조원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는 공인중개사가 355명(34.3%), 공인중개사 업무를 돕는 중개보조원은 72명(7.0%)이었다.
국토부는 2020~2022년 거래 신고된 빌라·오피스텔·저가 아파트 중 전세사기 정황이 확인된 2091건과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 사례를 추려 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세사기 의심 거래 1538건을 포착, 여기에 관여한 1034명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검거한 전세사기 가담자 3466명 중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9.4%(674명)이었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올해 상반기 깡통전세 피해 사례 제보를 받고 수사를 진행한 결과 공인중개사 7명, 중개보조원 5명 등 총 12명을 형사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처럼 공인중개사 등이 가담한 전세사기는 계속해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 가담을 넘어 아예 공인중개사가 총책 역할을 맡은 경우도 발각돼 충격을 안겼다. 경찰은 최근 서울·경기·인천 등에서 153세대의 전세보증금 약 353억원을 빼돌린 일당 9명을 범죄단체조직죄와 사기 등의 혐의로 검거하고 총책 공인중개사 A씨 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공인중개사의 전세사기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국토부는 최근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10월 19일부터 중개보조원은 매도자나 매수인을 만날 때 반드시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중개보조원과 소속 공인중개사에 각각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 공인중개사가 고용할 수 있는 중개보조원 수는 중개사 1인당 5명 이내로 제한된다. 공인중개사법상 중개보조원은 고객을 매물 현장으로 안내하는 등 단순 보조 역할만 할 수 있다. 따라서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계약 내용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지난 7월 2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인중개사법은 집행유예를 포함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는 공인중개사가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해 징역형을 받은 경우에만 자격이 취소됐다.
또 비윤리적인 공인중개사의 활동을 제재하기 위해 공인중개사 직무와 관련해 형법상 사기, 사문서 위·변조, 횡령·배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에도 자격이 취소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양도·양수 행위를 알선만 해도 금지행위로 규정, 이를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지자체 차원의 교육도 이뤄지는 중이다. 인천시는 지역 내 6700여명의 개업 공인중개사 등을 대상으로 11회에 걸쳐 부동산 거래사고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경북 영주시 등에서도 부동산 중개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무교육을 실시했다.
윤권근 대구시의원은 전세사기 방지를 위해 공인중개사 예방교육 실시 의무 등의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발의했으며, 서울도시주택공사(SH)는 전세임대주택 공인중개사 교육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업계 차원의 자성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현행 28시간인 실무교육을 64시간으로 대폭 확대하고 연수교육과 직무교육도 각각 12시간에서 15시간, 4시간에서 8시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국토부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업윤리 및 사고 예방교육 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수습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자격증을 신규 취득한 공인중개사들이 일정 기간 중개업 실무 경험을 습득한 뒤 개업할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수습 기간을 거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