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가 1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지원 사각지대에 몰린 다가구 피해자에 대해서도 구제 방안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모습이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정부는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이 건물을 통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가구주택은 지난 6월 시행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다세대와 달리 개별등기가 되지 않고 건물 전체가 한 사람의 명의로 돼 있어 사실상 단독주택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피해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다세대는 경매가 집마다 별도로 진행되지만 다가구는 건물 전체가 통으로 처분된다.
따라서 경매에 낙찰되더라도 선순위 관리자부터 돈을 차례대로 회수하기 때문에 늦게 계약한 세입자일수록 피해액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세입자마다 이해관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특별법에 따른 우선매수권 활용이나 경·공매 유예 조치도 사실상 힘들다. 나머지 세입자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는 한 우선매수권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도시연구소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전세사기 피해 사례 단독·다가구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이른다. 피해 사례 5건 중 1건은 현실적으로 피해를 구제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에 정부는 LH 등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다가구 피해주택을 통으로 매입하고 임차인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가구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LH의 기존 제도를 전세사기 피해주택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에도 피해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공공이 피해주택을 매입해 임대를 주는 방식의 ‘주거 지원책’은 실질적인 구제 방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은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구제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보증금 채권이나 선순위 금융기관의 채권을 매입해 일부라도 보증금을 돌려주고 경·공매 혹은 범죄수익 환수를 통해 회수하는 ‘선 채권 매입 후 구상권 청구’ 방안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매입’ 구상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방안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사업시행기관으로 거론되는 LH의 기존 주택 매입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탓이다. 피해 주택 공공매입이 제도화 된다 하더라도 LH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공매입 시 가격 기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임대인·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을 여지가 크고, 비싸게 구입하는 경우 ‘부실 매입’ 문제가 비화될 우려가 있어서다.
한편 전세사기 피해자는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지방자치단체가 접수한 전세사기 피해는 총 1212건으로, 피해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난 6월(4173건) 이후 누적 접수 건수는 총 1만543건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전세사기 피해는 지자체가 접수를 받아 자체 조사 후 국토부로 이관된다. 이후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지원 내용이 확정된다. 지난 9월까지 피해자로 확정된 6063건을 분석한 결과 인천(25.4%), 서울(23.8%), 경기(17.2%) 등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66.4%에 달했다.
전세사기 주택 유형을 보면 다세대주택(32.2%), 오피스텔(26.2%), 다가구주택(11.3%) 등 비아파트가 전체의 69.7%를 차지했다. 임차보증금은 2억원 이하가 80%를 차지했는데 이는 사회초년생의 소액 보증금이 전세사기의 집중 표적이 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지표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