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패션이 LF(회장 구본걸)로 간판만 바꾸고 새롭게 출발한다고 선언한 사실에 대해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간 입방아에 올랐던 ‘디자인 도용’에 관한 의혹이 해소되기도 전에 이미지 쇄신을 목표로 사명을 바꾼 건 ‘눈 가리고 아웅’식 대처라는 것이 그 이유다.
게다가 LG家(가)의 특성상 ‘LG’란 상호를 버린 데에는 결정적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은 “‘LG패션’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실추됐기 때문에 사명을 바꿨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LG패션 라푸마 “살로몬의 소송은 악의적 노이즈 마케팅에서 비롯…”
사실 LG패션은 과거부터 디자인 도용으로 골머리를 썩어왔다. 비단 한두 차례가 아니다. 살로몬, 버버리에 이어 몬츄라 등 세계 유수 기업들과 논란이 있었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LG패션은 “베낀 것은 아니다”며 강변했다.
지난 2월 28일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 본사는 LG패션(현 LF)에 ‘경고 서한’을 보냈다.
LG패션 라푸마의 워킹화 ‘프렌치 익스프레스 1.0’이 살로몬 러닝화 ‘센스 만트라’의 디자인 요소를 베꼈다는 것이 서한의 주요 내용이었다.
서한은 △측면의 검은색 지그재그 무늬 △사다리꼴 모양의 신발끈 조임 장치 △신발 내부 스트립 △신발 밑창의 두 곡선 등 LG패션이 총 5가지 요소의 국제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LG패션 라푸마 신발의 유사성으로 자사의 매출에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하며 해당 상품의 제작과 판매, 유통 중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LG패션 측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해외 브랜드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이런 혐의를 일축했다.LG패션 관계자는 “살로몬이 논란의 근거로 삼은 국제 디자인 특허는 국내에서 특허 출원이나 등록된 근거가 전혀 없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며 “또한 문제가 된 디자인은 대다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범용 디자인”이라며 살로몬 측의 주장을 받아쳤다.
더불어 그는 “살로몬은 2011년과 2012년 국제 디자인 특허를 출원했지만 라푸마는 2005년부터 해당 디자인을 국내에서 사용해왔다”며 “그렇다면 우선 사용 권리는 오히려 라푸마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LG패션 측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LG패션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로 “LG패션이 과거부터 디자인 도용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LG패션의 라푸마가 디자인 도용 논란에 휩싸인 건 이번만이 아니다. 과거 라푸마가 이탈리아 브랜드 몬츄라 제품을 베낀 것도 업계 내부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당시 LG패션은 (도용)논란의 중심에선 관련 제품을 모두 회수하고, 디자인을 도용한 디자이너를 해고했다. LG패션 전무이사가 직접 몬츄라코리아에 사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LG패션의 디자인 도용은 끝나지 않았다.
LG패션 DAKS “버버리의 체크무늬 도용…무슨 소리?”
지난해 2월 영국의 버버리는 LG패션이 자사의 체크무늬 패턴을 도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버버리는 체크무늬가 사용된 셔츠의 제조와 판매를 금하고 5,000만 원의 배상금을 요구했고, LG패션도 이에 맞서 맞소송을 걸며 사건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LG패션이 버버리에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강제조정하며 소송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같은 결과를 두고 양사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다.
버버리 측은 법원이 LG패션은 손해배상금으로 버버리에 3,000만 원을 지급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LG패션의 디자인 도용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LG패션 측은 버버리가 해당 제품의 제조와 판매 중단 요구를 철회했다는 점에서 도용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버버리 측이 LG패션에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닥스 셔츠의 시즌 판매가 종료됐고, LG패션이 더 이상 문제가 된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확약서를 제출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디자인 도용이 맞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이 와중에 지난 1일 LG패션이 LF로 사명을 바꿨다.
이처럼 LG패션을 둘러싼 표절 논란이 수면으로 가라앉기도 전에 새로운 사명이 발표되면서, 이들이 원한 건 이미지 ‘쇄신’이 아닌 이미지 ‘세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2007년 LG상사에서 분리를 감행해 독립경영을 시작했을 때도 LG패션은 ‘LG’라는 사명을 고집해 LG그룹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이렇듯 그간 깊은 가족애를 보여왔던 LG가의 특성상 최근 ‘LG’란 상호를 버린 데에는 결정적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LG패션의 영업이익은 대폭 줄어들고, 주가 역시 30% 이상 증발했다. 이에 LG패션은 ‘생활 문화 기업’으로 화려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습처럼 굳어버린 디자인 도용 논란과 국제적으로 잃어버린 도덕성과 신뢰성부터 회복해야 부활도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몇 차례에 걸쳐 반복된 표절 논란과 향후 혹시 있을지도 모를 디자인 도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가 LG패션, 아니 LF의 앞날에 잔뜩 낀 안개를 걷을 수 있는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제적 이미지 실추가 사명 변경으로 이어졌다는 의혹에 대해 LF 관계자는 “이 같은 의혹 자체가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LG그룹과의 상호권 계약 만료에 따라 사명 변경이 결정된 건 지난해 7월이었다”며 “버버리 소송과 관련된 법원의 강제조정은 지난해 10월 말이었고, 살로몬 사태는 올 2월에 발생한 것이라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다만 그룹의 상호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주주총회라는 절차가 필요해 최종 변경 시기가 늦어졌을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