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오 패션그룹형지(이하 형지) 회장이 '글로벌 형지'를 외치는 가운데, 형지글로벌패션복합센터를 둘러싼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6일 열린 '2024 인천 송도 국제마라톤' 대회에는 '송도 형지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이라는 동호회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마라톤으로 슬픔을 승화하는 것인지, 피해사실을 알리기 위한 의지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살펴보자.
형지는 지난 2021년 인천 송도에 ‘형지 글로벌패션복합센터’를 준공했다.
오피스(지상 17층), 오피스텔(지상 23층), 판매시설(지상 3층) 등 총 3개동으로 이뤄진 대규모 센터를 오픈하면서 최병오 회장은 "형지의 지난 40년간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겠다”며 “세계시장 전초기지인 송도에서 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새로운 성장 신화를 이룰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3년 뒤 이 센터는 피해자 130여명을 울리는 분노의 대상이 됐다.
형지는 지난 2013년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 건설에 착수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 준공 직후 부동산 관리업체 '스테이송도'에 오피스텔을 매각하기로 했다.
문제는 산업단지 내 분양받은 산업용지의 경우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업집적법)에 따라 완료신고 후 5년간 처분이 제한되기 때문에 오피스텔 소유권을 5년 동안 넘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형지는 스테이송도와 소유권 이전을 나중에 하는 조건으로 매각을 추진했다. 피해자 측은 이 계약 자체를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어떤 피해를 입었나?
"형지의 '책임 없음' 주장, 믿을 수 없다"
형지와 매매 계약을 체결한 스테이송도는 '분양이지만 무늬는 전세'로 계약을 할 투자자를 모집했다. 형지와 스테이송도간의 매매계약서를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고 5년 뒤 소유가 가능하도록 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피해자들은 한 사람 당 4500~5000만원을 지불하고 전세 계약을 맺고, 5년 뒤에 2021년 시세로 분양 받거나 보증금을 반환받기로 했다. 총 피해 규모는 40여 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들은 스테이송도로부터 '오피스텔을 기숙사로 활용해 월 18~20만원의 임대 수익을 받아줄 테니 임대차 계약과 전대차 계약을 동시에 맺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스테이송도는 센터 오피스텔 10개 층을 라이크홈㈜과 임대차계약을 별도로 체결한 후 다른 회사 직원들에게 임대를 하고 임대료를 피해자들에게 매월 20여 만원씩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스테이송도는 중도금 마련을 위해 MG새마을금고∙대구은행 등 20여개 금융기관으로부터 650억원 빌렸고, 이 대출을 갚지 못하면서 지금의 사태에 이르렀다.
근저당권 1순위가 금융기관이고, 피해자들은 2순위라 전세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급하기로 했던 월임차료도 어느 순간 미지급되고 있다.
특히 스테이송도가 대출을 하는 과정에서 형지 계열사 네오패션형지는 650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오피스텔과 판매시설을 담보로 제공하며 물상보증인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은 이번 오피스텔 분양 피해 사건에 형지가 관련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 측은 "스테이송도와 형지 간에 체결된 매매 계약서가 대출을 할 때는 임대차/위탁 계약서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계약 변경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며 "대출은 스테이송도가 받는데 담보 제공은 형지가 한 것도 석연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형지 vs 스테이송도, 입장은?
"스테이송도가 책임질 일" vs "형지가 약속 안지켜"
형지 측에서는 위탁 관리업체인 스테이송도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형지는 다수의 언론 매체에 '스테이송도와 오피스텔 투자자 사이의 계약 사실에 대해 몰랐고, 최대한 피해자 구제를 하려고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전하고 있다.
스테이송도가 채무불이행 상태가되면서 물상보증을 선 네오패션형지도 채무 부담을 안게 된 상황이다.
네오패션형지는 형지타워에도 한국투자저축은행 등 7곳에서 운영자금으로 400~500억원 규모 대출에도 물상보증을 서고 있어, 재무상황이 쉽지 않는 형국이다. 형지타워는 최병오 회장도 담보대출에 연대보증을 섰다.
반면 스테이송도 측은 대출 받은 650억원은 다 형지에 줬고, 형지가 오피스텔과 판매시설을 각각 30%씩 의무적으로 사용해 주기로 한 약속과 각종 정산을 미루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지글로벌패션복합센터, 이전에도 문제 있었다.
형지는 앞서 글로벌패션복합센터 내 상업시설 분양을 두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인천경제청)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2019년 말 인천경제청은 산업집적법에 따라 5년이 지나야 처분이 가능한 상업시설을 형지가 불법 사전 분양하려 했다는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또 분양 신고를 하지 않고 분양을 한 혐의(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 위반)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때는 인천경제청이 토지매매계약을 할 때 형지에 산업집적법에 대한 내용을 누락했다는 과실이 드러나, 형지는 피해를 입은 입장이었다. 분양을 한 후 받은 대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인천경제청은 형지가 판매시설을 '임대 후 분양전환'이라는 방식으로 분양을 진행하는 것을 승인했다. 구매자가 분양가의 40%를 선납하고 매년 5.2%의 분양 수익을 보장받은 다음 5년이 지나 소유권을 등기이전 받는 형식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오피스텔 분양 피해자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판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에도 해당 분양 방식은 산업집적법을 교묘히 피해가는 꼼수라는 비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