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성착취물이 제작·유통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은 수백만명을 넘기며 사상 최고의 동의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해자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폭발...관련 청원들 총 '500만여명' 동의
텔레그램 n번방 청원은 이른바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통한 혐의를 받는 '박사' 조모씨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은 'n번방'이 시초로 이후, 유사한 대화방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지난 16일 경찰은 조씨를 체포했다. 20대 조씨는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미성년자 포함 피해자들을 유인해 얼굴이 나오는 나체사진을 받고 이를 빌미로 불법 성 착취물을 찍도록 협박해 이를 유료 회원들을 대상으로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거센 분노가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 집중되며 관련 청원들에 동의하며 이들에 대한 강력 처벌 및 신상공개라는 큰 물결을 만들고 있다. 청원인들은 "어린 학생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워달라", "수요자의 구매 행위에 대한 처벌" 등을 요구했다.
지난 18일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는 23일 오후 3시 현재 228만9947명이 참여했다. 이는 역대 최다(기존 183만1900명) 참여인원이다. 또 20일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청원 역시 158만7607명의 동의를 얻고 있다.
이밖에 '가해자 n번방박사,n번방회원 모두 처벌해주세요' 청원이 37만5560명, 'N번방 대화 참여자들도 명단을 공개하고 처벌해주십시오' 청원이 32만2591명, '텔레그램 아동.청소년 성노예 사건 철저한 수사 및 처벌 촉구합니다!!' 청원이 26만6163명 등 모두 5건의 청원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문 대통령 "잔인한 행위...회원 전원 조사 필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이번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행위는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였다"며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경찰에게 "이 사건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특히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하게 다뤄달라"고 주문했다. 더불어 "필요하면 경찰청에 특별조사팀이 강력하게 구축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아동·청소년 16명을 포함한 피해 여성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국민의 정당한 분노에 공감한다"며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순식간에 300만명 이상이 서명한 것은 이런 악성 디지털 성범죄를 끊어내라는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절규로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에 처벌 규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근절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법률 개정도 이어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정부는 영상물 삭제뿐 아니라 법률 의료 상담 등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다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와 관련된 청원 5건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며 총 500만명에 육박하는 동의를 얻고 있다.
경찰, n번방 최초 운영자 '갓갓' 검거에 수사 집중
경찰이 성착취 영상 공유방인 텔레그램 'n번방' 최초 운영자로 알려진 '갓갓' 검거를 위해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또 경찰은 '박사방' 'n번방' 등의 성착취 영상을 단순 시청한 자에 대해서도 여론을 반영해 수사한다는 계획이다.
23일 경찰청 관계자는 n번방 수사는 운영자인 '갓갓'을 제외하고는 공범이나 다운로드를 받은 사람 등 상당부분 검거가 됐다고 밝혔다. 갓갓 관련 수사는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진행 중이다. 다만 '갓갓' 유력 용의자 검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앞서 경찰은 관련된 총 124명을 검거하고 조씨 등 총 18명을 구속했다. 검거된 인원 중에선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다운로드받거나 소지한 사람도 포함됐다. 텔레그램 n번방은 '갓갓'이 가장 먼저 n번방을 만들어 범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 조모씨가 운영한 이른바 '박사방'은 유사 범죄 중 강도가 높아 널리 알려졌다.
경찰은 성 착취물을 단순 시청한 경우에도 여론을 반영해 최대한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조 씨를 구속한 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 영상물을 보기 위해 '박사방'에 참여한 이용자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에 '텔레그램 탈퇴'가 상위권에 올랐다.
경찰은 또 텔레그램 n번방과 유사한 방식으로 또 다른 해외 메신저인 '디스코드'에서 미성년자 성 착취물이 유통된 정황을 포착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가 구속되는 등 n번방 수사가 집중되자 불법 음란물 유통이 '디스코드'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내일(24일) 내부위원 3명과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경찰은 공개가 결정되더라도 얼굴과 이름 등 수준과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치권 엄정 처벌 '한 목소리'
23일 민주당 백혜련, 박경미 의원 등 여성 의원들과 예비후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과 아동, 청소년을 성착취해도 처벌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치고, 가해를 가해로 인식하지 못하는 성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가 가해자 '박사' '갓갓'이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공모자 26만 명의 또 다른 괴물들을 만들어 냈다"며 'N 번 방 사건 재발금지 3법' 발의를 선언했다.
우선,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형법상 특수협박죄로 처벌하게 하겠다고 했다. 또 상습범을 가중처벌하고, 유포 목적이 없더라도 불법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다운로드 받는 행위 자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유포될 경우에도 처벌하도록 했다. 불법 촬영물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도 처벌토록 했다.
앞서 지난 4일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졸속 법안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성착취 동영상을 시청한 공범자들에게 성폭력에 대한 죄를 물을 수 없고 너무 늦게 제정이 되면서 n번방 사건의 주요 가해자들에 대해 형벌불소급 원칙 적용으로 처벌을 물을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향해 '박사' 조 모 씨의 신상을 공개해 달라며 "국민 알권리 보장을 넘어 성폭력처벌에 관한 특례법 25조로 신상이 공개되는 최초의 사례로 반인륜적인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일벌백계'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N번방을 비롯한 성범죄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최우선 과제로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며 "불법 촬영물의 제작·유포자의 강력 처벌은 물론, 소비자까지 벌금형으로 처벌하겠다고 했다" 말했다. 이어 "국민의당은 아동·청소년 공약 때 '한국형 스위티 프로젝트'를 허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여론의 요구대로 신상공개가 이루어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조국 전 장관으로 인해 n번방 용의자들의 신상 공개와 포토라인 세우기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국민이 포토라인 공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 2019년 10월 어떤 일로 피해자의 포토라인 공개를 금지했다"며 조국 전 장관을 겨냥했다.
(데일리팝=임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