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먼 사촌보다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먼 곳에 사는 사촌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좋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이웃사촌’과의 심적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실제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응답 비율은 절반 정도에 그쳤다.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이웃사촌의 의미는 유효하지 않다’고 답했는데, 이같은 경향은 1인가구(75.0%)에게서 더욱 크게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통적인 이웃 관계의 부재를 대체하기 위해 청년들이 SNS를 활용하고 있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연구원 ‘SNS를 통해 스스로 이웃을 만든 청년들’ 보고서는 서울 만 19~39세 청년 1인가구를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해 청년들의 이웃과 동네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이 보고서는 서울연구원의 2022 작은연구 지원사업을 통해 발간된 것이다.
보고서는 청년 1인가구 비율이 높은 서울 관악구를 중심으로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참여자를 모집했다. 지원자 중 당근마켓을 통해 대면 만남을 진행한 횟수가 3~5회 이상 되는 주민을 21명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온라인 대화가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기까지 청년들은 여러 과정을 거쳤다. 먼저 모임의 주제와 인원 모집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에 부합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후 채팅 말투와 당근 온도, 판매 물건 내역 등을 통해 상대방의 성향을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향이 잘 맞고 대화가 통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서야 만남의 장소를 정하게 된다. 이때 만남장소는 지하철역 주변이나 각자의 주거지 중간 등으로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공통의 관심사가 존재하거나 목적성이 분명한 경우 지속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회성 만남이 이뤄지는 1차 전제는 ‘목적 중심’이긴 하지만, 1년 이상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참여한 사람들 간의 소통 만족과 즐거움이 있을 때 가능했다. 주로 동갑내기 혹은 또래인 경우가 많았다.
당근을 통한 만남은 오랜 친구만큼 친밀하거나 가끔 봐도 편한 관계는 아니지만 인접한 곳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부담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을 통해 만난 관계인 만큼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청년들은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자신의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기 좋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점에서 일일이 서로를 소개하지 않아도 왠지 모를 친근감을 공유하는 관계이며, 특정 목적을 중심으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다른 활동으로의 연계가 쉽게 일어나는 특징이 관찰됐다.
이들이 당근마켓을 통해 동네 이웃을 만나는 이유는 총 11개 항목으로 나뉜다. 이중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 등 ‘관계’ 중심의 항목은 36.3%로 동네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지연과 학연의 기회가 현저히 적어지면서 동네 이웃과의 관계맺기는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거나 시간을 때우는 행위 그 이상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혼자서는 가지 않던 장소들에 방문하는 경험이 늘면서 동네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모습도 보였다.
연구에 참여한 21명 중 15명의 청년은 당근만남 대상을 ‘이웃’이자 ‘동네 친구’라고 정의했다. ‘만나고자 하는 욕구가 맞아 떨어졌고, 공통의 관심사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가까이 사는 동네 사람이라는 전통적 이웃개념이 아닌 청년들만의 이웃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